[사설]폭설에도 아랑곳않는 복지부동

  • 입력 2001년 1월 8일 18시 50분


태풍 홍수 폭설 지진 등 기상 재해는 매번 자연의 위력과 인간의 한계를 되돌아보게 한다. 그렇지만 거칠고 사나운 자연 재해의 현장에서 인명과 재산 피해를 줄이기 위해 땀을 흘리는 공무원 경찰 군인의 모습을 보며 국민은 걱정을 덜고 비로소 세금을 낸 보람을 느끼게 된다.

주말에 20년 만의 폭설이 쏟아져 전국 공항이 마비되고 고속도로에서는 극심한 교통체증이 빚어졌다. 김포공항은 폭설 때문에 7일 오후 항공기 착륙이 전면 금지됐다. 경부고속도로 서울∼부산 구간은 20시간이 걸렸고 영동고속도로 일부 구간은 운행이 중단됐다. 교통 사고와 농작물 피해도 컸다.

중앙재해대책본부는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6일 저녁부터 관련 공무원에 대해 비상대기 지시를 내리고 일요일인 7일 오전 비상근무령을 발동했다. 하위직 공무원들은 지난해 말 화이트 크리스마스에 이어 이번에 또 주말 제설작업에 동원돼 출근길 교통대란을 막기 위해 대로의 눈을 치우느라 새벽잠을 설치며 고생을 했다.

이에 비해 건설교통부 등 주무 부처의 고위 공무원들은 실로 한심한 근무 자세를 드러냈다. 비상근무령 속에 기습 폭설로 인한 피해가 곳곳에서 발생했는데도 이들 중 일부는 ‘재택(在宅) 근무’를 하다 언론의 체크를 받고 뒤늦게 사무실에 나타났다. 이들은 방송 기자의 전화를 받고 ‘공무원은 일요일에 안나간다’ ‘집으로 팩스를 통해 보고가 들어오는데 나간다고 될 일도 아니지 않느냐’는 등 복지부동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 때문에 유관 부처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비상대책반조차 가동되지 않았다.

8일 아침 날씨가 따뜻해 대로가 얼어붙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나사가 풀린 공무원들의 모습을 전해 듣는 서민들의 불만지수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번과 같은 기상 재해가 발생했을 때 국무총리 장관부터 나와 챙기는 모습을 보여줬더라면 일부 공직자들의 한심한 자세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새해 벽두부터 정쟁(政爭)으로 소란하니 나라의 기강이 흐트러져 민생 행정이 실종돼 버린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기습적인 자연재해의 상황에서는 속보성에서 단연 앞서는 방송의 역할이 더없이 크다. 방송은 오락 프로그램을 줄이고서라도 시시각각 기상 속보를 내보내 주민들이 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년 만의 폭설에도 불구하고 한가한 프로그램이 계속 이어지는 방송을 보며 방송의 공익성을 생각하는 시청자들이 많았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