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록의 독서일기]"시골로 가니 희망이 있었다"

  • 입력 2001년 1월 8일 16시 18분


신사년 새해벽두 첫 휴일, 20년만의 폭설이라고 한다. 마구마구, 소복소복, 포곤포곤, 하루종일 내릴듯한 눈을 바라보며 마음은 벌써 토끼몰이를 하던 고향에 가있다. 이 얼마나 고즈넉한 아침인가. 세상이 온통 하얗다. 누군에겐가 편지를 쓰거나 모르는 이에게 수다를 떨고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기도하고 싶다. 소파에 누워 책장에서 꺼내든 책이 헬렌-스콧 니어링이 지은 '조화로운 삶'(보리출판사 펴냄/224쪽 7500원)이다. 맞춤맞게 잘 뽑아들었다. 갈피갈피 줄을 치며 외우려고 애쓰며 읽었던게 언제였더라. 다시 한 장 한 장 넘긴다. 그 감동을 아무에게나 말하고 싶다. '제 인격을 걸고 권하노니 꼭 읽어보십사'.

이 책은 동아일보 '책'팀이 2000년 한해 최고의 책으로 뽑기도 했다.이 책은 왜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가? 이 책을 지은 니어링부부는 또 누구인가?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보리 펴냄)라는 책을 기억하시는가? 안읽었다고? 아니 제목도 안들어봤다고요?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을 양서(養書)라 부르자.

이 책은 우리가 모르고 살거나 그저 동경이나 하고 남의 일로 치부한 '또다른 生의 세계'를 선사한다. 대체 어떤 책이길래?문명에는 저항하고 자연에는 순응하며 '조화로운 삶은 이런 것'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준 그들 노부부도 이제 '아주 작은' 숟가락을 놓고 자연으로 돌아갔다(스코트 니어링 1883-1983 헬렌 니어링 1904-1995).

이 책은 두 사람이 1932년 뉴욕의 도시생활을 접고 버몬트시골로 들어가 살았던 스무 해의 기록이다.먼저 그들은 진실한 사랑의 이름으로 '조화로운 삶'을 살기로 작정했다. Living the good life말이다.이어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의 원칙을 열 두가지 세우고 10년계획을 세웠다.

그 첫번째가 자급자족. 그리고 잠자는 집을 손수 지었다. 땀흘려 농사를 지어 양식을 장만했다. 그것도 유기농법으로 곡식과 채소와 과일과 꽃을 가꾸었다. 먹는 것도 중이나 마찬가지였다. 하루에 한 끼, 적은 양의 음식을 먹었다. 실제로 모든 것을 자급자족한다면 돈을 많이 벌 필요도 없다. 건강한 공동체를 꿈꾸었으나 그 일은 많이 힘들었다. 애초에 정한 원칙대로 살았다. 두 사람은 자본주의 경제로부터 독립하여 자연 속에서 자기를 잃지 않고 건강한 사회를 생각하며 '조화롭게' 산 것이다. 21세기 최대의 화두는 아마도 '생태'일 것이다. 이 책을 즐겨 찾는 까닭은 환경친화적인 경향과 여유와 느림의 미을 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자연속에서 살며 조화로운 삶을 꿈꾸는 이들은 많다. 또 꿈만 꾸며 실행은 주춤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 책은 이들 모두에게 참삶의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삶은 만족감을 얻어야 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단순하면서도 충족된 삶을 산 아름답고 훌륭한 영혼들과 종이로나마 시공을 초월하여 같은 숨을 쉰다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인가.

'월든'생활을 먼저 체험한 홀아비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천국서 빙긋이 웃으며 이들을 반기지 않았을까.이 시대 '정신적 사표'의 두번째 저작물을 읽으며 사뭇 경건함을 느낀다. 작년 실천문학사에서 '스콧 니어링의 자서전'도 나왔다. 그의 뛰어난 재능, 부지런함, 꺾이지 않는 이상, 청렴함, 여유로운 마음에 흠뻑 빠질 것이다. 一讀 아니 精讀을 권한다.

눈은, 함박눈은 아직도 내리고 있다. 눈이 오려면 한 닷새 내리 이렇게 왔으면 좋겠다. 그런데 내일 빙판 출근길은 어떻게 하지?

최영록<동아닷컴 기자>yr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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