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기타]'21세기 희망은 農에 있다'

  • 입력 2001년 1월 5일 18시 59분


한 알의 씨를 땅에 뿌려 놓고 농부들은 오랫동안 기다린다.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풀을 뽑아 주고, 그리고 몇 개월을 기다려 그 씨를 다시 거두어들인다.

한 톨의 씨가 땅에 떨어져 다시 씨가 되어 우리 손바닥에 올라올 때까지의 그 긴 시간, 그 기다림은 순리이다.

자연의 순환 속에서 자연의 순리를 몸에 익히고 살았던 농부들이 이 땅에서 사라지고 있다. 어린아이가 태어나 자라 자연을 이해하고 자연을 몸에 익히며 허리 굽혀 땅을 일구고 땅에서 얻은 것들로 생명을 이어가며 자연과 더불어 살았던 농부들은 이제 없다.

이제 농사는 단순히 어떻게 하든 이익만 얻으면 된다. 땅이야 죽든 말든 농약을 뿌리고, 비료를 뿌려 한해 한해 많은 수확을 올려 이익만 남기면 되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땅은 농부의 몸과 마음이 아니다. 땅과 곡식을 자기의 살과 피로 여겼던 농사는 없고 농업만 존재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허리를 굽히고 땅을 일구어 씨를 뿌리고 곡식을 자기 몸과 같이 소중하게 다루는 농사일은 우리의 음식거리를 생산하는 그 이상의 사회적 중심을 잡아주는 정서적인 기능을 했다. 곡식이 자랄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며 농사를 지었던 농군들이 이 땅에서 사라지면서 우리들의 삶은 삭막해지고, 각박해지고, 광폭해져 가고 있다.

자연을 무시한 생산의 질서는 이 땅을 닮아 간다. 나는 때로 무섭다. 아름답고 작은 골짜기를 가로지르는 엄청나게 넓은 도로를 보면 무섭고, 논이고 밭이고 아무 곳에나 엄청난 집을 짓는 사람들을 보면 무섭다.

땅이 죽고, 물이 죽고, 공기가 죽는데 잘 살면 어떻게 잘 산다는 것이며, 땅과 물과 공기를 죽여 놓고 우리가 어떻게 잘 살 수 있다는 말인가. 참말로 나는 지금 내가 먹고 입고 자는 일이 무섭다.

이 책 ‘21세기 희망은 農에 있다’(정경식 외 지음·두레)는 젊은 농부의 생태주의 선언과 유기농 실천의 눈물겨운 기록이다.

인간다운 삶과 진정한 희망이 어디에 있는가. 시대착오적이고,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우리의 진정한 희망은 한 포기의 보리 이삭 앞에 앉아 웃고 있는 이 가난한 농부들에게 있음을 나는 믿는다.

‘오래 된 미래’를 보여주는 이 책은 인간의 욕망과 오만이 빚어낸 거침없는 자연 파괴와 황량해져 가는 인간성에 대한 준엄한 경고이자 인류에게 던지는 희망의 메시지이다.(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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