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더스클럽]"네티즌의 새로운 중심은?"

  • 입력 2001년 1월 2일 13시 29분


칼로 물을 벨 수는 없는 일입니다. 흐르는 시간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끔은 시간을 '단층 촬영'해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어제를 되돌아 보는 것, 그리고 오늘의 단면을 들여다 보는 것은 내일에 대한 반성과 희망을 낳기 때문입니다.

2000년에서 2001년으로 넘어가는 시간을 잘라 보았습니다.

<네티즌의 중심:10∼20대에서 50∼60대로>

episode 1 : "용돈이 필요하니 돈을 보내거라" 후배인 Y기자(36)는 구랍(작년 12월) 한 장의 e메일을 받고 깜짝 놀랐습니다. 보낸 이는 다름아닌 환갑을 훨씬 넘긴 어머니(66). 99년만 해도 이런 내용의 이야기는 '전화'나 '편지'로 배달된 것입니다.

"어머니가 어떻게…"

Y기자는 잠시 아찔 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고향 광주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동생이 대신 보내주었거니 생각했습니다. 부인(34)도 역시 "나도 못하는데 설마 어머니께서…"라며 Y기자의 생각에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시간도 못돼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Y기자는 e메일 대신 '전화답장'을 올렸고 어머니는 작년 세밑 한달동안 구청에서 실시하는 '주부 인터넷 교육'을 받았다며 웃었습니다.

"너는 e메일 보낼 줄 모르냐?"

어머니는 간단한 e메일을 넘어 사진을 '스캐닝'하고 각종 파일을 '어태치'하는 어엿한 '파워 유저'가 되었다며 자랑했습니다. 솔직히 Y기자는 지금의 어머니에 비해 인터넷이나 컴퓨터를 다루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럽다고 했습니다.

Y기자의 어머니처럼 작년 전국에서 인터넷 교육을 받은 '주부'는 120만명에 달합니다. 주부인터넷 교육은 단지 주부들만 교육시킨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부모와 남편, 그리고 자녀에게 엄청난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그 '주부'의 영향권에 들어있었던 사람은 대략 500만명(부모 2명, 자녀 2명 기준)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들은 인터넷이 몰고올 '문화적 쇼크'를 경험한 것입니다.

이것은 불과 1년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한 풍경입니다. 여러분도 기억하시겠지만 작년초만 해도 이런 말이 유행했습니다.

"인터넷은 10∼20대, 기껏해야 30대 정도가 누리는 신세대의 언어다.40대 이상은 이런 인터넷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퇴출되고 말 것이다."

한마디로 뉴밀레니엄은 인터넷을 '38선'으로 삼아 신구세대를 확연하게 구분 지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닷컴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인터넷 이용인구가 폭발적 성장세를 보이면서 컴퓨터에 익숙치 않은 40대 이상의 직장인과 노년층은 강한 '퇴출압력' 내지 '문화적 소외감'을 느낀 게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2000년과 2001년의 사이.

당연해 보이던 그 '논리'와 '추론'은 Y기자의 '어머니들'에 의해 수정되고 있었습니다.

2년전 한국을 방문한 미국 MIT공대 미디어랩 연구소장 네그로폰테 교수와 장시간 점심을 겸한 단독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는 '비트(Bit)', '디지털이다' 등의 저서를 냈고 '인터넷의 선지자''디지털의 예언자'로 불리는 문명 예언가입니다. 단독 인터뷰 자체가 '큰 행운'인 인기있는 취재대상이기도 합니다.

포항제철의 초청을 받은 그는 포항공대로 가는 헬기에서 기자와 '기상 인터뷰'를 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운 좋게도' 강풍이 몰아닥쳐 헬기운항이 금지되면서 포항강연이 취소되었고 하루종일 일정없이 서울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 김에 기자는 '점심이나 하자'고 제의해 네그로폰테 교수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2시간동안 단독 인터뷰를 만끽한 것입니다.

그는 당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앞으로는 50대 이상 은퇴한 사람들이 오히려 인터넷의 주력군이 될 것이다. 노후의 재미를 인터넷에 붙이면서 그들이 갖고있는 경제력과 영향력이 인터넷으로 '전이'될 것이기 때문이다. "

1년여 만에 그의 '예언'은 2000년과 2001년을 넘어서는 시점에서 우리사회의 현실이 되고 있었습니다. 50∼60대 네티즌이 몰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무서운 속도로 변하는 인터넷 한국>

episode 2 : 이화여대 장상총장은 구랍 3만여통의 e메일 카드를 보냈습니다. 대상은 재학생과 동문 그리고 교직원들이었습니다. 대학총장이 e메일로 카드를 보낸 것 자체가 드문 일이어서 관심을 끌었습니다. 종이카드를 보냈다면 3000만원에 가까운 비용과 시간이 걸리겠지만 e메일을 이용해 예산을 10분의 1수준으로 줄였다는 '경제성' 이 돋보입니다. 온라인(e메일 카드)은 비용과 시간 면에서 오프라인에 비해 탁월한 경쟁력을 갖고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러나 저는 '보냈다'는 사실보다 3만여명이 e메일 연하장을 '받았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이화여대 졸업생은 약 12만명. 이중 생존해있는 동문은 10만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그들은 사회 곳곳, 지역 곳곳에 흩어져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화여대 동문 3만여명이 e메일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사회의 정보화 수준을 짐작하게 하는 지표가 되는 것입니다.

e메일카드가 이번 연말연시처럼 '인기있는' 관심사가 된 적은 없었습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e메일로 연하장을 보내다 보니 온라인에 '과부하'가 생길 정도였습니다. 일부 e메일 카드업체는 이용자 접속이 몰아닥치는 바람에 서버가 다운되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업체 관계자들은 "연말연시 우편물 대란이 벌어지지만 이제부터는 e메일 연하장으로 인한 체증이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메일 연하장은 2000년 말을 구분 짓는 하나의 '사건'입니다.

작년 봄 인터넷 비즈니스와 관련, 외부기관의 교육을 받을 때의 일입니다. 교육 첫날 참석자 40여명은 일일이 명함을 교환했습니다. 악수도 빼놓지 않았지요. 밀려드는 'e세상'의 흐름을 타기 위해 참여한 '기성세대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교육생 가운데 e메일 주소를 갖고있는 사람은 한두사람에 불과했습니다. 대부분이 '굴뚝산업'의 사장 혹은 임원들인 때문도 있었지만 e메일의 활용이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7개월이 지난뒤 그들이 다시 모인 망년회 자리. 그들은 일일이 명함을 교환했던 과거의 모습을 떠올리며 한바탕 크게 웃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서류결제와 약속을 e메일로 해결하는 '온라인형 인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2000년을 풍미했던 인기 사이트를 꼽는다면 단연 '아이러브스쿨' '다모임'등과 같은 동창회커뮤니티였습니다. 거의 모든 네티즌이 이 사이트를 한번쯤 방문했고, 상당수 직장인들은 연말 동창회 행사일정을 이런 커뮤니티을 통해 알았을 것입니다.

망년회에서 "동창회커뮤니티가 뭐야?"라는 질문을 던졌다가는 주변으로부터 '컨추리꼬꼬(촌닭)'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인터넷은 이제 떼어낼 수 없는 우리 사회생활의 일부가 된 것입니다. 호기심의 대상이 아닌 일반상식의 범주로 편입되었고 '유행가' 혹은 '369'와 같은 확고한 대중성을 갖기 시작한 것입니다.

비즈니스위크지는 작년말 한국을 '인터넷 열풍에 휩싸인 나라'로 특집보도했습니다. 굳이 외신의 보도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얼핏 잘라본 2000년말 우리의 모습. 그것은 '인터넷에 관한 한 무섭도록 빠르게 변하는 나라와 국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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