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신디사이저는 로봇목소리의 실패작

  • 입력 2000년 12월 27일 18시 46분


컴퓨터 음성의 실패작, 신디사이저테크노와 힙합이 가요계를 평정한 오늘날, 신디사이저의 등장은 대중 음악사에 있어 하나의 혁명으로 기록될 것이다.

전자 키보드를 빼어 닮은 이 악기는 포크 기타나 바이올린 소리에서부터 드럼에 이르기까지 수 백 가지의 소리를 재생할 수 있다. 신디사이저가 없었다면, 서태지의 ‘난 알아요’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신디사이저를 발명한 과학자들이 처음부터 ‘음악’을 위해 연구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SF 영화에 단골 손님처럼 등장하는 로봇이나 컴퓨터에게 사람의 목소리를 갖게 해 주고 싶었다. 사람과 로봇 사이의 친밀감을 강화하는데 있어 로봇이 내는 ‘목소리’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1950년대부터 미국 프린스턴 대학을 중심으로 ‘인간의 목소리로 말하는 컴퓨터’에 대한 연구가 시작됐다. 그들은 기본적인 음들의 파형을 변조해서 다양한 색깔의 소리를 합성하는데 성공했다.

이 장치는 종소리, 바이올린 소리, 피아노 소리, 드럼 소리 등을 아주 똑같이 흉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의 목소리. 사람 목소리는 파형이 너무 복잡해서 아무리 흉내를 내려 해도 계속 ‘기계적인 음성’이 나는 것이었다. 결국 국가는 더 이상 그들의 연구에 돈을 댈 수 없다고 판단하고, 프로젝트를 중단시켰다.

1965년 ‘로버트 무그’가 이 프로젝트의 후임 책임자로 들어왔다.

그는 인간의 목소리를 똑같이 흉내내는 데는 실패했지만, 이 장치를 다른 곳에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악기가 바로 ‘신디사이저’다.

신디사이저의 등장으로 인해, 하나의 악기만으로 그룹 사운드 연주가 가능해졌고, 사람의 목소리가 특유의 기계적인 발성으로 변형되면서 ‘테크노 음악’ 같은 장르가 탄생하기도 했다.

또 ‘샘플러’나 ‘미디’ 등 음을 합성하거나 변조할 수 있는 디지털 기술들을 이용해 공룡 울음소리처럼 아무도 들어본 적 없는 소리를 재생하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영화 ‘쥬라기공원’을 보면, 공룡의 성대구조를 고려해 새 소리를 변형한 ‘공룡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만약 ‘사람의 목소리로 말하는 컴퓨터’ 프로젝트가 실패하지 않았다면, 가요계는 어떻게 됐을까? 신디사이저가 악기 대신 ‘가수의 목소리’를 대체하지는 않았을까?

신디사이저는 우리 인간의 목소리가 쉽게 흉내낼 수 없을 만큼 ‘깊고 오묘한 소리’임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이기도 하다.

(예일대 의대 연구원)

jsjeong@boreas.med.yale.edu

<신동호기자>@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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