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원덕/구조조정 부담 골고루 져야

  • 입력 2000년 12월 27일 18시 46분


노사 갈등이 구조조정의 발목을 잡고 있다. 노사 갈등 때문에 구조조정이 지연되거나 무산되고 경제 위기가 재발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구조조정은 국가 경제와 기업을 회생시키기 위해, 그리고 새로운 고용 창출과 근로 조건의 향상을 위해 반드시 성공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적 과업이다. 즉 구조조정은 노사 상생의 길이다.

▼공감대 쌓아야 노사갈등 줄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조조정을 둘러싼 노사 갈등과 노정 대립이 끊이지 않고 오히려 심화되고 있어 걱정이다. 한국전력과 한국통신 등 공기업과 대우자동차 등 민간 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사간 갈등과 진통이 끊이지 않았으며, 최근에는 국민 주택은행 합병에 대한 은행원들의 격심한 반발이 계속되고 있다.

노사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구조조정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무엇보다도 정부와 기업이 구조조정 계획의 수립과 추진 과정에서 노사 관계나 갈등 관리 차원의 고려와 대비를 충실히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특히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사 갈등의 홍역을 치른 경우를 살펴보면 예외 없이 사전적 고려와 대비가 부족했다.

구조조정은 ‘시장 논리’를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 구조조정은 ‘시장의 신뢰’를 얻어 경쟁력을 강화하고,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혁신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냉엄한 시장 논리만 강조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구조조정 과정은 기득권 박탈이나 고통 분담을 수반하기 때문에 결국 인간과 인간 사이의 문제, 조직과 조직 사이의 문제로 귀착된다. 따라서 ‘시장 논리’에 충실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구조조정이지만 역설적으로 ‘인간의 논리’를 바탕으로 ‘인간의 신뢰’를 얻지 않고는 불신과 갈등의 심화로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노사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부와 기업이 국민과 종업원으로부터 구조조정의 필요성과 방향에 대한 공감을 얻고, 나아가 마음으로부터의 감동을 얻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영 부실에 대한 객관적 분석과 경영 전망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노사가 공유해 현실 인식의 공감대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구조조정의 긴박성에 대해 성심과 진정을 다한 설득 노력을 해야 한다.

둘째, 구조조정에 따른 고통을 공정하게 분담하고 경영자가 솔선해서 부담해야 한다. 미국의 크라이슬러 자동차나 한국의 기아자동차의 경우처럼 성공적인 구조조정 사례에서는 예외 없이 경영자가 고통 분담에 앞장서서 직원들에게 동참을 호소했다. 그리고 경영 부실의 원인이 정상적인 경영에 있지 않고 부정한 경영에 있다면 엄중한 책임 추궁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노동조합과 종업원에게 구조조정에 대한 공감대 형성을 촉진시킬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한 모럴 해저드를 치유하게 할 것이다.

셋째, 구조조정 과정에서 고용 조정이 불가피한 경우 퇴직자에 대한 보호 조치를 충실히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실직자의 사회 적응, 재취업, 전직 훈련, 생계 안정, 의료 보호 등을 위해 정부 기업 노조 사회단체 등이 함께 노력하고 역할을 분담하는 종합 사회 안전망을 충실하게 만들어야 한다. 퇴직자에 대한 보호가 강화되면 그만큼 구조조정에 대한 거부감과 저항도 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퇴직자 보호조치 강화해야▼

마지막으로 노사 갈등을 예방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립적인 전문가의 역할을 제고해야 한다. 중앙노동위원회의 한국전력 분규 조정, 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의 철도 차량 분규 해결에서 보여준 것처럼 노사 양측으로부터 신뢰받는 전문가는 분규를 예방하고 해결하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노조도 구조조정에 대한 입장과 전략을 재정립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운동이 고립되고 조직적으로 약화될 우려가 없지 않은 것이 지난 3년간의 경험이 잘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노조도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조조정에 대안을 제시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리적인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하는데 기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때를 놓치지 않고 구조조정이 추진될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

이원덕(한국노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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