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주가/상한가]冬天으로 떠난 미당 서정주

  • 입력 2000년 12월 25일 13시 19분


"관악산이 웃는다고 말한 할망구(부인 방옥숙)가 진짜 시인이고 나는 대서쟁이야.”

지난 10월 10일 해로하던 부인 방옥숙 여사가 세상을 뜬후 병을 얻은 미당 서정주 선생이 끝내 부인의 뒤를 따라 저세상으로 길을 떠났다.

크리스마스를 한시간여 앞둔 24일 밤11시. 밖에는 소담스런 눈발이 내리고 있었다.

'노부부의 사랑'에 하늘도 감동한 것일까?

아니면 60여년간 미당이 쏟아냈던 그 수많은 시어들이 한꺼번에 눈꽃으로 변해 내리는 것일까?

20세기 한국시단의 거봉 미당이 지상에서의 85년 삶을 마감하는 날은 그렇게 눈이 내렸다.

문학평론가 유종호는 "미당의 타계와 함께 한국문학의 20세기도 막을 내리고 말았다. 지난 가을 소설가 황순원이 세상을 떠난데 이어 미당까지 사망함으로써 광복 이전부터 활동했던 대표적 문인들을 모두 잃었다"고 슬픔을 표했다.

'국화옆에서'등 미당의 시 1~2편을 암송하지 못하는 한국인들이 과연 있을까?

미당의 시편들은 시 그 자체로, 혹은 패러디한 글로, 아니면 가곡으로 한국인의 정신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새삼 일깨워준 시인. 민족 고유의 정서와 차원 높은 언어의 기교를 결합한 '언어의 연금술사'. 노벨문학상에 5차례나 추천된 한국의 대표문인.

그 많은 찬사를 한몸에 받았던 미당이었지만, 친일행적 시비와 5공시절 전두환씨에 대한 지지발언으로 후학들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미당은 별도의 유언은 하지 않고 "눈앞의 것에 휘둘리지 말고 먼곳 보는 대인이 되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노시인이 세상에 보내는 마지막 메시지였던 셈. 그 말속에 그의 과거행적에 대한 참회가 담겨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미당이 떠난 서울의 밤거리. 그리고 오랫만에 찾아온 화이트크리스마스. 그의 과거행적 시비도 이순간 만큼은 하얀 눈꽃속에 묻혀 버리길 바라는 건 무리일까?

최용석/ 동아닷컴 기자 duck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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