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할리우드'에 식상했다면 이 영화들을…

  • 입력 2000년 12월 21일 19시 00분


《올해 미국에서 개봉된 영화들 중 어느 작품이 가장 빼어난 작품으로 평가를 받았을까. 최근 뉴욕타임스의 영화비평가 3명은 각각 ‘올해의 영화 10선’을 발표했다. 이 중 스티븐 홀든이 뉴욕타임스 아트면을 장식했던 영화들 가운데에서 뽑은 ‘수작 10선’을 소개한다. 이밖에도 엘비스 미첼과 A O 스콧은 ‘햄릿’ ‘와호장룡’ ‘치킨런’ 등을 훌륭한 작품으로 선정했다. 》(http://www.nytimes.com/2000/12/17/arts/17HOLD.html)

1. 십계(The Decalogue)

▼폴란드 무대 '삶과 죽음'에 대한 명상▼

‘십계(The Decalogue)’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10부작인 이 작품은 1988∼89년에 폴란드 TV를 통해 최초로 방영됐으며, 올해 들어서야 처음으로 극장에서 개봉되었다. 이 작품은 인간의 조건에 대한 포괄적인 명상을 담고 있으며 그 깊이와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상징이 지닌 힘으로 보면 잉그마르 베르히만 감독의 작품들과 같은 반열에 속한다. 십계명을 전체적인 바탕으로 깔고 바르샤바의 주택개발 지역을 무대로 한 이 10개의 우화들은 삶과 죽음의 의미, 도덕과 신의 존재에 대해 사색한다. 분명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 키에슬로프스키의 회의적인 시각은 이러한 주제들에 대한 해답이 수수께끼, 상징, 전조, 갑작스럽고 이상한 운명의 손짓 등을 통해서만 직관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임을 시사한다. 영화 전체의 분위기는 어둡고 우울하지만 각각의 이야기들은 재미있고 유쾌하다.

또 4년 전 세상을 떠난 이 폴란드 감독의 계시적인 사실주의는 가장 평범한 사물들에 빛나는 형이상학적인 무게를 실어주고 세상 모든 것들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2. ‘하나 그리고 둘(Yi Yi)’

▼대가족을 통해본 대만인의 초상화▼

영상이 매우 아름다운 에드워드 양 감독의 감동적인 이 3시간짜리 영화는 타이베이에 살고 있는 한 대가족의 삶을 다루고 있다. 결혼식으로 시작해서 장례식으로 끝나는 이 작품은 오늘날 유리로 뒤덮인 고층건물들의 숲 속에서 부유함을 즐기는 대만의 여러 세대들에 대한 초상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반항적이고 카메라를 두려워하지 않는 여덟살 짜리 소년(조너선 창)이다. 이 영화는 가정의 온갖 소란스러운 일들과 정신없이 돌아가는 첨단기술들 속에서 인간의 선택과 그 선택이 잘못되었을 때 또 한 번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심오한 질문들을 던진다. 영상 또한 사물들의 모습이 반사되는 창문을 통해 인물들을 관찰함으로써 이 영화의 자기 성찰적인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3. ‘거래(Traffic)’

▼마약거래 둘러싼 인간의 탐욕 부패▼

국제적인 마약거래를 다룬 영국의 미니시리즈를 각색한 작품이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내슈빌’ 이후 가장 강렬한 미국영화이며, 마약 거래인들과 이들을 단속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병렬적으로 배치해 탐욕 부패 사회적 타락의 파노라마를 만들어내고 있다.

마이클 더글러스와 캐서린 제타 존스가 출연한 이 영화는 마약과의 전쟁에서 미국 정부가 왜 지금까지 승리를 거둘 수 없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4. ‘인간성(Humanit)’

▼문명이란 얼마나 나약한 것인가▼

프랑스의 영화감독 브뤼노 뒤몽이 만든 이 뛰어난 영화는 서투르고 심리적으로 억압된 형사이자 동시에 살인 용의자인지도 모르는 인물(엠마누엘 쇼테)이 11세 소녀의 강간살해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강렬하면서도 자연주의적인 음향과찌르는 듯 날카로운 영상이 특징. 감자의 껍질을 벗기는 여인의 모습을 클로즈업한 장면은 인간의 피부를 벗겨내는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 뒤몽은 우리가 문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가 완전한 짐승이 되는 것을 간신히 막아주고 있는 ‘약한 막’에 불과하다고 암시한다.

5. ‘아름다운 진통(Beau Travail)’

▼프랑스 외인부대 배경 '남자들의 세계'▼

멜빌의 ‘빌리 버드’를 클레르 데니스가 각색한 이 작품은 동아프리카의 지부티에 있는 프랑스 외인부대의 전초기지를 무대로 원작에 담긴 비유들을 풀어나간다.

육감적이면서 동시에 금욕적인 이 영화는 남자들로만 이루어진 집단에 대한 한 여인의 시각을 다루고 있다. 남자들만의 사회에서 통용되는 권위, 억압, 규율, 명예의 엄격한 규칙은 이 영화에서 마치 군인들이 추는 발레와 같은 것으로 묘사되며, 외인부대 병사들의 훈련과정은 정화를 위한 황홀한 의식이 된다. 근사하고 환상적이며 잊을 수 없는 영화이다.

6. ‘간호사 베티(Nurse Betty)’

▼'오즈의 마법사' 연상 동화같은 작품▼

‘오즈의 마법사’를 연상시키는 이 동화같은 영화에서 주인공(르네 젤웨거)은 남편이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후 그 충격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린다.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멜로 드라마의 주인공 ‘잘생긴 의사(그레그 키니어)’와 결혼하기 위해 로스앤젤레스로 떠나고, 살인자들(모건 프리먼과 크리스 록)이 그녀를 뒤쫓는다. 영화는 포복절도를 할만큼 코믹한 장면들과 할리우드의 환상에 중독된 미국인들에 대한 통렬한 시각을 번갈아 보여준다.

영화 ‘남자들의 집단에서’에서 염세적이고 차가운 태도를 보여주었던 감독 닐 라부트는 이 영화에서 조금은 부드러워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7. ‘낙원의 색깔(The Color of Paradise)’

▼눈먼 소년의 세계 그린 이란 영화▼

마지드 마지디가 연출한 이 감동적인 이란 영화는 가난한 아버지에게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눈먼 8세 소년이 경험하는 세상을 그리고 있다.

슬픔과 정서적 불확실성을 묘사하면서도 자연의 아름다움과 파괴력에 대해 황홀할 정도로 관능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치 에덴동산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영화이다.

8. ‘인적자원(Human Resources)’

▼기업세계의 '어두운 면' 파해쳐▼

경영대학원을 갓 졸업한 한 젊은이가 자신의 아버지가 30년 동안 노동자로 일했던 공장에 화이트칼라 관리직으로 취직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처음에는 그의 눈에 세상 모든 것이 장밋빛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이중성과 정치적 계산이 난무하는 기업 세계에 떨어졌으며, 관리자들과 노동자들 사이의 전쟁 때문에 아버지와 대립하게 됐다는 것을 깨닫는다. 프랑스 출신의 감독 로랑 캉테는 대부분 전문배우가 아닌 사람들을 영화에 출연시켰고, 기업세계의 ‘어두운 면’을 매우 통찰력 있게 그려내고 있다.

9. ‘날 믿어도 돼(You Can Count On Me)’

▼고단한 세상살이 남매의 애정▼

극작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케네스 로너건의 감독 데뷔작. 이 영화는 혼자서 아이를 기르는 젊은 여성(로라 리니)과 고향으로 그녀를 찾아온 건달 남동생(마크 러팔로)의 이야기를 하나의 초상화처럼 그려내고 있다.

은행에서 일하는 누나는 고지식한 기혼남인 새 직장상사(매튜 브로더릭)와 불륜의 관계를 시작하고, 남동생은 누나의 8세짜리 아들에게 아버지 역할을 해 주려고 노력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이 영화는 고통과 분노로 괴로워하는 남매의 애정을 뛰어나게 조율된 연기를 통해 정제해서 보여주고 있다.

10. ‘난파(Cast Away)’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의 고독-광기▼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라고 할 수 있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페덱스(FedEx)의 직원은 태평양에서 비행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사람이 살지 않는 섬에 혼자 남게 된다. 할리우드 영화로서는 보기 드물게 무인도에 갇힌 사람의 고독, 공포, 광기를 훌륭하게 전달하고 있으며, ‘퍼펙트 스톰’이 보여주는 데 실패했던 인간과 자연의 장엄한 싸움을 뛰어나게 묘사한다. 또 이 영화의 비행기 추락 장면은 지금까지 다른 영화에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무서움을 안겨준다.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답게, 이 잊혀지지 않는 영화 역시 감상적인 사랑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http://www.nytimes.com/2000/12/17/arts/17HOLD.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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