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공작 협박이 대선전략인가

  • 입력 2000년 12월 13일 18시 53분


이회창(李會昌)총재의 차기대선 승리를 위해 한나라당 간부가 작성한 10개항 대책문건의 내용은 한마디로 역겹다. 한나라당은 “이총재에게 보고되지도 않은 ‘일개 당직자’의 습작”이라고 변명하지만 이 사안은 그렇게 보아 넘길 일이 절대 아니다.

문건은 여권핵심부와 예상되는 타 후보의 비리자료를 축적하고 정권불만세력을 조직적 전략적으로 활용하라고 제안했다. 정치를 저열한 공작과 음모의 수준으로 전락시킨 것이다. 또 ‘적대적 언론인의 비리 등 문제점 자료축적과 활용’을 적시했다. 공작적으로 언론의 고삐를 쥐라는 권유로 언론침해의 차원을 넘어 민주주의의 근간을 해치는 발상이다.

언론의 자유는 국민의 알 권리와 직결된다. 그런데도 자기들에게 ‘수틀리는’ 기사를 쓰면 협박하거나 거세해야 한다는 식의 대책을 당직자가 버젓이 내놓는다면 그 당을 민주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습작’이라도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된다.

한나라당은 지난해 한 일간지 기자가 작성해 여당 부총재에게 넘긴 ‘언론 장악음모’ 문건이 나왔을 때 “대통령이 하야해야 마땅한,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든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국정조사권과 특검제의 도입을 주장하며 국회를 보이콧했다.

그런 한나라당이 그때의 언론문건보다 비열한, 총체적으로 당 전략을 ‘이회창 대선 승리’에만 맞춘 문건을 만들었다는 것은 어떤 변명으로도 용납될 수 없다. 이총재는 문건 파문이 일자 바로 유감표명을 하고 “어떤 경우에도 언론자유가 침해되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그 정도로 이 일이 끝날 수는 없다.

한나라당은 문건 작성의 경위와 보고 라인, 활용 여부에 대한 진상을 모두 밝혀야 한다. 최소한 당의 자체조사위를 구성, 추호의 의혹도 없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해 국민에게 보고하고 사과해야 마땅하다.

사안이 이런데도 당 대변인은 “정당에선 누구나 이런저런 보고서를 만들고 없애고 하는데 어떻게 다 책임지느냐”는 식의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건이 작성된 당의 분위기와 풍토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해야 마땅한 당직자의 자세가 아니다. 이런 정도의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집권한다면 정치나 언론이 어떤 길로 가게 될지 두렵다.

스스로 국정조사라도 받겠다는 각오로 한나라당이 이번 문건사건에 대처하지 않는 한 이런 파동은 또 일어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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