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나도 주가조작 피해" 들고 일어선 투자자

  • 입력 2000년 12월 7일 18시 20분


주가조작으로 피해를 본 투자자들의 배상요구 행보가 한결 빨라지고 있다. 최근 서울고등법원이 대한방직 주가조작 피해자들이 배상을 받도록 판결한 게 촉매가 됐다. 대법원 판결이 남아 있지만 유사 사건들도 마찬가지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아주 높아졌다.

▽부산한 움직임〓한누리법무법인 강용석변호사는 7일 “주가조작으로 피해를 보았다며 문의하는 건수가 줄을 잇고 있다”며 “이 중에는 주식투자로 손실을 입은 동료 변호사들도 적지 않게 끼어 있다”고 귀띔했다.

강변호사는 “대한방직건의 배상판결로 현재 진행중인 현대전자와 세종하이테크건이 승소할 확률이 70∼80%로 높아졌다고 본다”고 낙관했다.

반대로 금융기관들은 ‘집안 단속’을 하느라 아주 부산하다. A투신운용사측은 “1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팔면 1년에 3억원 정도 벌뿐인데 손해배상에 걸리면 거덜난다”며 “매니저들에게 ‘탈법투자는 절대 하지 말라’고 강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금융기관들마다 10월부터 시행된 내부통제기준의 철저한 이행을 어느 때보다 강조하고 있다.

▽주가조작 피해범위 확대돼〓한누리법무법인은 최근 코스닥종목인 영남제분 투자자들과 상담중이다. 대주주의 허위사실 공표로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하는 투자자 110명이 손해배상소송을 내겠다고 모였다.

영남제분은 17일 대주주가 지분을 팔지 않겠다고 공표한 지 4일 만에 대주주 아들이 130만주를 팔았다고 공시했다. 대주주 지분이 묶일 것으로 기대해 주가가 올랐다가 다시 곤두박질치자 대주주의 말을 믿고 투자했던 투자자들이 들고일어났다.

작전뿐만 아니라 △허위 및 부실공시 △사업설명서 거짓작성 △허위사실 공표 등에 따른 피해도 주가조작에 해당돼 손해배상소송이 제기되는 것.

▽손해배상액 산정 쉬워졌다〓주가조작중인 것을 모르고 비싸게 산 투자자들은 작전이 없을 때 형성될 주가(정상주가)를 기준으로 피해액을 셈할 수 있게 됐다. 정상주가는 증권업협회와 증권학회 등이 사용하는 방법으로 산정되는 게 관례이다.

14일 첫 심리가 있을 세종하이테크 사건은 작전주가와 정상주가의 차액이 주당 평균 5000원 정도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피해자 360명의 보유주식이 70만주이므로 손해액은 35억원에 이른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대전자 사건은 현재 정상주가를 감정중이다.

▽작전세력 소속기관도 배상〓작전에 가담한 증권사 직원이나 펀드매니저들은 들통이 나면 본인 명의의 재산을 처분한다. 세종하이테크 주가조작에 가담했던 한 펀드매니저는 적발 직후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을 처분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대한방직의 판례는 작전세력이 소속된 기관이 배상을 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현대전자건은 이익치전회장이 일했던 현대증권이, 세종하이테크건은 펀드매니저들이 몸담았던 한국과 대한 삼성투자신탁(이상 사건 당시) 등이 배상요구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진기자>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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