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용관/양대 노총의 조직이기주의

  • 입력 2000년 11월 30일 19시 04분


공동보조를 선언한 양 노총의 경쟁관계를 보여주는 에피소드 하나. 11월26일 두 노총의 ‘공공연대’ 집회 사회를 본 한국노총 정부투자기관노동조합연맹 부위원장은 집회 이후 호된 질책을 받았다.

민주노총 단병호(段炳浩)위원장에게 먼저 연설할 기회를 주는 바람에 뒤이어 나선 한국노총 이남순(李南淳)위원장의 연설이 맥이 빠졌고 방송 등에도 단위원장 연설 장면만 보도되자 지도부가 “당신 민주노총 프락치 아니냐”며 혼쭐냈다는 것.

파업 여부로 떠들썩했던 한국전력 노조도 두 노총의 조직 경쟁이 물밑에서 치열하다.

2만4000여 조합원을 거느린 한전 노조는 한국노총 산하. 그러나 6개로 분할되는 발전소 직원들은 대개 젊은 층으로 상당수가 민주노총 성향을 갖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이중 3개 정도는 민주노총으로 갈 수 있다”고 했다. 한국노총은 ‘조직 사수’를 해야 할 입장.

기관사 등의 인력감축이 예정돼 있는 한국노총 산하의 철도노조 조직원 일부에선 “인력감축을 막아내지 못하면 민주노총으로 가겠다”고 한국노총을 협박하고 있다고 한 노동 전문가는 전했다.

이에 앞서 의료보험 통합 직전 직장의보노조와 지역의보노조가 각각 상급단체인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통해 통합 반대와 찬성을 위한 ‘대리전’을 펼쳤던 것도 조직 이기주의의 맥락으로 풀이된다.

파업을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하는 것도 문제. 한전노조 오경호(吳京鎬)위원장은 “국민의 불편 때문에 대승적 차원에서 파업을 유보했다”고 했는데 그러면 파업 운운하며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한 이유는 무엇이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 노동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근로자의 아픔을 끌어안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를 빌미로 치부는 숨긴 채 기득권만 유지하려는 노조의 태도도 문제입니다.”

정용관<이슈부>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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