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전진우/'한국형 축구'

  • 입력 2000년 11월 14일 18시 31분


올해 중국 프로축구 최우수지도자로 뽑힌 한국 출신 이장수 감독은 “한국축구가 방심하면 곧 (중국축구에) 역전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 예고가 현실로 나타났다. 한국청소년축구(19세 이하)가 18년 만에 중국에 패한 것이다. 물론 한 경기 졌다고 난리칠 일은 아니지만 ‘불길한 신호’인 것만은 분명하다. 90년대 이래 한국의 청소년축구는 차츰 일본에 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한국축구는 일본의 한 수 아래가 됐다. 중국이라고 그 길을 밟지 말란 법이 있는가.

▷‘기(技) 7, 운(運) 3’이라는 축구시합에서 경기에서는 이기고 승부에서 지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다. 그것이 축구의 묘미이기도 하다. 문제는 경기 내용이다. 30년 축구팬의 눈으로 보았을 때 엊그제 한중전은 한국의 완패였다. 수비는 엉성하고 허리도 부실했다. 공격은 날카롭지 못했고 고질적인 골 결정력 부족은 여전했다. 더구나 전체적으로 개인기가 달리는 가운데 수비 조직력마저 갖추지 못하고 있으니 강한 상대를 이기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놀라운 것은 청소년대표팀의 문제를 성인대표팀도 고스란히 안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축구가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성장해도 경험 외에 개인기나 조직력에서 별로 나아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축구전문가들은 나이 먹은 뒤에는 개인기량이 발전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재목이 시원찮아 작품을 만들기 어렵다고 하소연도 한다. 개인기는 어려서부터 닦아야 한다는 얘긴데 그동안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어온 소리다.

▷11년째 한국축구대표팀의 중앙수비를 맡고 있는 서른한 살의 홍명보 선수는 아마 2002년 월드컵에서도 자리를 지켜야 할 것이다. 10년이 넘도록 한국축구계가 그만한 선수를 길러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와 축구계가 ‘2002 월드컵 필승대책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은 좋다. 월드컵 공동주최국으로서 망신을 당하지 않는다면 수십억원을 들여 외국인 감독을 데려올 수도 있다. 하지만 진정 축구를 살리려면 이젠 정말 길게 내다봐야 한다. 그래야만 10년 후쯤 ‘한국형 축구’가 나올 수 있다.

<전진우논설위원>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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