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도둑 맞은 미래

  • 입력 2000년 11월 10일 18시 34분


■ 도둑 맞은 미래 / 테오 콜본 외 지음 / 권복규 옮김 / 368쪽 1만원 사이언스북스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남의 집 담벼락에 소변을 보고 있었다. 손으로 물건을 잡고 용변을 보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요즘 젊은이들은 정력이 떨어져 큰 일이야. 내가 젊었을 땐 손 놓고 용변을 봐도 바지를 적시지 않았는데 말이야” 했다고 한다. 그러자 아들이 대답하길 “아버지, 이렇게 잡고 있질 않으면 얼굴로 다 튀어서 그래요.”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 이래 가장 섬뜩한 환경신문고인 ‘도둑 맞은 미래’에 따르면 머쓱했던 그 아버지가 진짜로 걱정해야 할 일이 생겼다. 요즘 아들들은 나이 든 아버지에 비해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숫자의 정자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92년 프랑스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에 보면 1975년에 30세가 된 1945년생 남성들의 정자수가 정액 1㎖ 당 평균 1억200만 마리인데 비해 1992년에 30세가 된 1962년생 남성들의 정자수는 불과 5100만 마리였다. 이 두 집단간의 연령차이가 겨우 17세이고 보면 문제의 심각성을 짐작하고도 남으리라.

원래 남성의 정자수는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이젠 완전히 거꾸로 돼버렸다. 확증을 얻는데 좀 시간이 걸렸지만 다이옥신이나 DES 같은 이른바 환경호르몬이 주원인으로 밝혀졌다. 미국 생식의학회의 보고에 의하면 임신을 하지 못하는 부부 중 거의 절반이 남편 정자의 수적 부족이나 운동성 저하 때문이라고 한다. 이젠 며느리가 소박을 맞을 게 아니라 사위를 소박 놓을 일이다.

뭍에 사는 동물 중 가장 빠르다고 알려진 치타도 절멸 위기에 놓였다. 개체수가 엄청나게 줄어든 것도 문제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더 직접적인 원인이 바로 정자수의 감소라고 한다. 치타의 경우에도 그 원인이 호르몬 유사물질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대로 가다간 아무리 자주 암수가 함께 삼밭에 들어도 수태가 되지 않으리라는 추측이다.

현대 남성들이 겪는 질병으로 가장 흔한 것 중의 하나가 전립선 비대증이다. 미국의 경우 전립선암이 남성 암의 거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이 같이 빈번한 전립선 질환이 출생 전에 겪은 호르몬 유사물질에 대한 노출에 상당 부분 기인할지 모른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 충격을 더한다. 현대 남성들은 점점 더 남자 구실도 제대로 못할 뿐 아니라 생존 자체도 위협받고 있다.

우리 나라에도 환경호르몬의 피해가 속속 밝혀지고 있다. 온 나라가 환경호르몬에 흥건히 젖어 미래를 송두리째 빼앗기기 전에 문단속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최재천(서울대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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