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부패방지법 말뿐인가

  • 입력 2000년 11월 7일 20시 08분


동방금고 불법대출과 관련해 금융감독원의 장래찬 국장이 자살한데서 드러났듯이 불법과 부패사건은 대체로 공직과의 끈이 이어져 있다. 시민단체는 이런 부패의 커넥션을 끊어낸다는 목표로 사건이 있기 오래 전부터 공직관련 부정부패를 막기 위한 부패방지법 입법운동을 펼치고 있으나 이번 국회회기에도 열매를 기대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여야가 성의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부패방지 입법 시민연대’(공동대표 지은희)는 4년 전부터 논의가 있었으나 정치권의 ‘태업(怠業)’으로 마냥 미루어져온 부패방지법과 자금세탁방지법 등을 국회에 내놓고 입법을 채찍질하고 있다. 우선 시민연대의 구성부터 참여연대 경실련 반부패국민연대 여성연합 등 36개 단체를 아우른 데다 의원들의 서명도 받아가며 그 명단을 공개하는 방법을 써서 재적의원의 76%에 달하는 208명의 사인도 얻어냈다.

96년 참여연대가 부패방지법안을 국회에 낸 것부터 치면 비슷한 법률이 올라온 것은 이미 여러 차례다. 같은 해 국민회의가 비리조사처 신설, 특별검사제 도입을 골자로 한 부패방지법안을 냈고, 99년에는 현정부와 민주당이 반부패기본법안을 냈으나 상임위조차도 정하지 못한 채 15대국회 마감과 함께 자동 폐기되고 말았다.

겉으로는 ‘특검제 채택 여부를 둘러싼 다툼’처럼 보였지만 속사정을 살펴보면 ‘정치자금의 투명성’에 떳떳지 못한 여야가 소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특히 부패방지를 위한 특검제를 둘러싸고 입장을 바꿔가며 대립하는 것을 보면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여당이었던 신한국당(한나라당)은 4년 전 야당인 국민회의가 특검제를 하자고 할 때 결사적으로 반대해 무산시켰다. 그러나 지금은 여당이 된 민주당이 특검제를 뺀 법안을 내밀고 야당이 된 한나라당은 이에 극력 반발하고 있다. 부패방지법이 천연되는 이유가 정치권의 얄팍한 당략 때문이라는 것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공직자의 재산등록과 취업제한을 규정한 공직자윤리법의 개정안은 이제 겨우 정부부처간에 퇴직자 취업범위, 재직중의 주식투자 문제 등에 관해 의견을 좁혀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종전의 퇴직 2년 내 취업금지도 거의 지켜지지 않았던 관행 등을 주목해 법을 엄격하게 개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국회가 공직의 부패 고리를 차단하기 위한 부패방지법 입법, 공직자윤리법 개정에 과감하면서도 치밀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거기에 소홀하면 부패의 공범이나 방조자라는 비판도 각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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