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同姓禁婚(동성금혼)

  • 입력 2000년 10월 26일 18시 19분


禁―금할 금 婚―혼인할 혼 滅―사라질 명 蕃―불어날 번 殖―많아질 식 嗣―후손 사

생물학자들에 의하면 머지 않아 수많은 생물이 滅種(멸종)될 것이라고 한다. 일부 소수 남아있는 種도 같은 형질의 종끼리 交接을 함으로써 개체가 劣性化(열성화)되어 결국은 장래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同姓禁婚이 출현하게 된 것도 이같은 優生學(우생학)적인 고려가 있었으며 후에 儒家(유가)의 倫理(윤리)까지 가세함으로써 더욱 강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일찍부터 同姓禁婚의 規定이 있었다. 주된 이유로는 不蕃(불번) 또는 不殖(불식)이다. 부인의 임신율이 낮거나 기형아의 출산으로 자칫 代가 끊어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세상의 여러 不孝 중 絶嗣(절사·후손이 끊어짐)가 가장 큰 것이라고 여겼던 만큼 그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심지어 妾을 맞이할 때도 엄격하게 따졌으며 혹 姓을 알 수 없는 경우에는 占이라도 쳐서 해결했다.

우리나라에서 同姓不婚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三國志(삼국지) 魏志(위지) 東夷傳(동이전)에 보인다. 즉 ‘濊族(예족)은 同姓不婚한다. 그것은 疾病을 기피했기 때문이다’ 라는 기록이 그것으로 아마도 당시 같은 氏族끼리는 결혼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신라시대 왕실의 경우 骨品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近親婚(근친혼)이 성행하였으며 고려시대에는 더욱 성행하여 마침내 忠宣王이 宗親(종친), 兩班(양반)들의 同姓禁婚令을 내렸을 정도다.

그 것이 조선시대에 들어오면 엄격한 유교체제 하에서 同姓不婚에다 異姓不養(이성불양·姓이 다르면 양육하지 않음)까지 곁들여져 철칙으로 굳어지고 말았다. 儒家에서 중시하는 宗法을 지킴으로써 사회질서를 확립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同姓同本은 물론 祖上이 같으면 同姓異本이나 異姓同本, 異姓異本간에도 結婚을 하지 않았으며 반대로 祖上이 다르면 婚姻이 可能했다. 철저한 同宗主義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民法에서는 同姓同本만이 禁婚의 대상이다. 이 때문에 同宗이라 할 수 있는 金海 金氏나 金海 許氏, 安東 金氏와 安東 權氏, 그리고 文化 柳氏와 延安 車氏 등은 법률상으로는 결혼이 가능하다.

이처럼 법률과 실제 사이에 커다란 乖離(괴리)가 있었던 民法이 개정되게 되었다는 소식이다. 사실 本 條項 때문에 고통을 받았던 수많은 사람을 생각한다면 무척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鄭錫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478sw@email.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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