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대근/대통령의 다림질

  • 입력 2000년 10월 22일 18시 31분


한국은 세계적인 ‘명품 시장’으로 꼽힌다. 한국 사람들만큼 유명 브랜드를 좋아하는 국민도 드물다는 것이다. 영국산 버버리 제품의 10% 이상이 한국에서 팔린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고가품의 유행 속도도 엄청나게 빠르다. 재미동포 로비스트 린다 김이 기자회견장에 쓰고 나왔던 선글라스가 관심을 끌면서 이 제품이 금세 동이 나기도 했다. ‘비싸야 더 잘 팔린다’는 말은 한국에서만 통하는 얘기일지도 모른다.

▷한국 사람들의 고가품 선호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여러 가지 진단이 있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자기과시 욕구가 강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그럴듯해 보인다. 특히 입고 걸치는 의류의 경우 그것이 곧 신분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졌고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제품을 사는 게 아니라 브랜드 파워를 사는 것이란 얘기가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해 1년 내내 한국을 뒤흔든 옷로비 사건도 따지고 보면 과시적 소비를 통해 권력을 뽐내려 한 특권층의 그릇된 행태였다는 분석도 있다.

▷제3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 참석했던 각국 정상의 검소한 모습이 화제다. 핀란드의 타르야 할로넨 대통령(여)은 본국에서 자신이 사용하던 다리미를 가져와 객실에서 손수 옷을 다려 입었고 스웨덴 예란 페르손 총리의 부인도 호텔측에 다리미를 부탁해 남편의 옷을 직접 다렸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한 호텔 관계자는 “정상과 수행원들의 세탁물 가운데 소매 끝이 해져 있는 옷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지도자들이라면 정말 믿고 국정을 맡길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마거릿 대처 전 영국총리가 한 대학에서 강연을 하면서 “도덕 없이는 미래도 없다”고 말했다. 21세기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가기 위해서는 첨단기술의 발달도 중요하지만 도덕과 윤리의 뒷받침이 필수적이라는 경고로 해석된다. 이번에 유럽 각국의 정상이 보여준 근검절약이 관심을 끄는 것도 대처 전 총리가 지적한대로 거기에서 그 나라의 미래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송대근논설위원>dk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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