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광은/北이 먼저 변해야 한다

  • 입력 2000년 10월 2일 23시 10분


지난 6월의 남북정상회담 이후 약 4개월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남북간에는 다양한 회담이 계속되고 남북이산가족 상봉 등 가시적인 성과도 일정 부분 있었다. 그러나 지난 주에 있었던 일련의 남북간 회담에서는 북한측이 속도를 조절하려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했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 정부가 대북정책과 관련해 가져야 할 기본원칙을 다시 한번 짚어보고자 한다.

정부는 대북관계에 대해 뚜렷한 전략적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를 달성하는 방향으로 장단기적인 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우선 단기적으로 평화공존의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그리고 이 단계를 거친 뒤에는 민족의 재통일에 대북정책의 궁극적인 목표를 둬야 할 것이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열쇠는 단적으로 말해서 북한의 변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평화공존의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서 북한은 노동당 규약에 명시돼 있는 대남적화통일을 공식적으로 포기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100만명이 넘는 병력의 3분의 2가 비무장지대에서 100km 이내에 배치돼 있는 북한군의 배치상태에도 최소한의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미사일을 비롯한 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문제도 우리 정부가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해결돼야 할 것이다. 이러한 조치는 평화공존 체제를 수립하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정부 대북정책의 궁극적인 목표인 평화통일에는 근본적으로 북한체제의 변화를 통한 남북한 체제의 최소한의 동질성 회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이질적인 체제를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의 섣부른 외형적 통합은 심각한 내부혼란을 초래할 위험성이 있다. 극단적으로는 내전을 초래할 위험성까지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자본주의 체제인 북예멘과 사회주의 체제인 남예멘이 10여 차례의 정상회담을 거쳐 90년대 초반 합의통일을 이뤄냈지만 불과 몇년 후에 양측 사이에 내전이 발생해 결국에는 북예멘이 무력으로 재통일을 달성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러한 예멘의 사례는 서로 다른 체제의 외형적 통합에 관해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따라서 북한은 현재의 폐쇄적이고 통제된 사회에 초기 단계의 시민사회가 싹틀 수 있도록 북한 주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기본적인 자유와 인권을 보장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군 주도의 계획경제 체제에 민간인 중심의 시장개념이 도입돼야 할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통치권력 또한 획득과정과 행사면에서 최소한의 민주화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북한이 앞에서 언급한 평화공존을 위한 조치나 위와 같은 체제변화를 스스로 이행할 수 있을지가 문제다.

우리가 일방적으로 북한에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면 북한이 우리를 신뢰하게 돼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스스로 변화하리라고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개인 사이에는 통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국가에 대해서는 적용될 수 없다고 본다. 국가간의 관계를 단순한 신뢰나 호의에 의존하는 것 만큼 위험한 발상은 없다고 본다. 마키아벨리도 국가간의 신뢰는 힘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결국 북한의 변화를 조건으로 북한에 대하여 각종 지원을 제공하는 방법, 즉 상호주의 원칙을 대북관계에 적용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필자가 말하는 상호주의는 우리가 일방적으로 베풀기만 하면 우리만 손해니까 반드시 반대급부가 있어야 한다는 형평성 차원에서의 편협한 상호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대북정책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 전제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수단으로서의 방향성이 있는 전략적 상호주의라는 점이다.

최근 북한은 대외적으로는 과거의 고립정책에서 탈피해 국제사회에 참여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평화공존과 민족의 재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북한의 실질적 조치와 체제의 동질성 회복이 필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의 경제력과 외교역량이라는 정책수단을 전략적 상호주의 원칙에 입각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사용해야 한다. 북한의 변화없는 남북관계 개선은 통일은 물론이고 평화공존에도 도움이 안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광은(한국외대교수·국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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