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훈의 세상스크린]타잔이 도시에서 자랐다면…

  • 입력 2000년 9월 25일 18시 37분


제 아내는 재일교포 3세입니다. 그러니까, 피는 100% 한국사람이지만 아내의 할아버지 세대가 일본 땅으로 건너가 정착을 한 경우입니다. 아내는 일본에서 대학을 마칠 때까지 고교시절 단체여행 며칠 다녀간 것이 한국을 직접 본 전부였고, 대학졸업후 뉴욕 유학 중 저를 만났는데 본국 한국인과 인간관계를 맺은 것은 저와의 만남이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 日태생 아내의 모국 배우기

아내는 저를 처음 봤을 때까지만 해도 우리말을 못했고, 저 또한 일본어를 전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영어로 의사소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둘 다 영어가 유창하지 못했던 까닭에,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할 때나 말다툼이라도 하게 되면 한일, 일한 사전을 하나씩 놓고 손가락으로 “This, This”하고 짚어가며 서로를 설득한 적도 있습니다.

제가 가끔 밥을 국에 말아 먹을 때면 아내 눈에는 몹시 이상하게 보였나 봅니다. 일본에서는 ‘오차즈께’라는 음식 정도를 빼고는 밥과 국을 섞어 먹는 게 무척 낯선 일이라고 합니다. 저 또한 일본식으로 밥그릇을 손에 들고 젓가락으로만 밥을 먹는 아내에게, 그것은 식사예절이 아니라고 하며 그릇을 내려놓으라고 지적했습니다.

유학을 마치고 제 청혼을 받아준 아내는 자기의 할아버지가 떠났던 조국 한국에 돌아와 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우리말을 배우기 위해 연세대 한국어학당에 다니며 결혼준비를 하던 시절, 아내가 가장 못견뎌했던 것은 “한국사람이 왜 한국말을 못해?”라는 비아냥거림이었다고 합니다. 또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제가 함 혼수 예식장 청첩장 만들기 등 모든 것을 한국식으로 진행하려하자 아내는 몹시 힘들었다고 합니다.

서로 사랑했기에 결혼했지만, 아내와 저는 문화차이로 늘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의 논리는 한국사람이 왜 한국문화를 이해하고 따르지 못하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힘들던 어느 날, 아내는 저에게 차분하게 질문을 해왔습니다.

“당신은 저를 한국사람으로 보십니까?”

“?…”

“저는 한국사람도, 일본사람도 아닌, 한국의 피가 몸에 흐르고 일본의 문화를 가진 ‘재일한국인’이라는 ‘소수민족’입니다.”

그후 저는 더 이상 문화차이로 다투지 않았습니다. 아내를 저와 같은 본국 한국인이라 생각하지 않고 ‘재일한국인’이라는 외국인으로 인정하고 지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겐, 이 세상에 원래 갖고 태어난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 못지않게 어떤 환경에 처했었는가도 중요한가 봅니다.

◇ 근본 못지않게 환경도 중요

밀림의 왕자 타잔은 원래 체력이 좋게 태어났겠지만, 정글에서 동물과 함께 자라지 않았다면 나무를 탈 줄 몰랐거나 우람한 근육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고기집에 들어가 고기를 먹지 않아도 고기 냄새가 옷에 배듯, 근본도 중요하겠지만 그 근본도 환경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지 않을까요? 한국생활 7년째를 맞는 제 아내는 요즘 밥그릇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숟가락으로 식사를 해도 편하다고 합니다.

joonghoon@seromesof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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