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칼럼]백진현/남북경협 냉철한 분석 아쉬워

  • 입력 2000년 9월 22일 18시 34분


경의선 복원 기공식이 있던 바로 그날 증시가 대폭락한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어떤 함수관계가 있는 것일까. 18일 주가폭락은 유가상승과 대우차 문제가 직접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따지고 들면 경의선 복원 등 최근의 남북관계와 전혀 무관하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경의선 복원은 남북화해와 협력을 상징한다. 정부는 경의선 복원을 ‘철의 실크로드’의 개통이니 한반도가 세계중심국가로 도약하는 발판이니 하는 등 거대한 의미로 부각하지만, 보다 현실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이번 철도 복원은 본격적 대북경협의 첫걸음인 셈이다.

반면에 외국인이 상장주식의 3분의 1을 소유하고 있는 우리 증권시장은 세계화를 상징한다. 증시 대폭락은 한국경제의 장래에 대한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을 반영하며, 북한요인은 이런 불안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남북화해와 경제회복은 우리에게 모두 중요한 목표지만 이번 ‘블랙 먼데이’는 이 두가지 목표가 때로는 상충될 수도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결국 두 목표간 우선순위를 올바르게 설정하고 균형감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능력을 벗어나는 대북지원이나 수익성을 외면한 대북투자는 일시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에 기여할지 모르겠지만 결국은 우리경제에 큰 부담이 돼 남북이 모두 어려워지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미 경고 사이렌은 울렸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우리에게 지금 가장 시급한 일이 무엇인지 올바른 순위를 설정하고 국력을 집중해 경제도 살리고 남북관계도 개선하는 ‘윈―윈’ 전략을 서둘러야 한다.

6월의 남북정상회담은 우리사회에 내재된 민족주의를 분출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를 통해 우리 문제를 우리가 주도하겠다는 자신감을 회복한 것은 긍정적인 발전이지만 다른 한편 민족주의는 국제현실을 보는 우리의 시각에 상당한 혼선을 초래하기도 했다. 바깥보다는 안으로 눈을 돌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정확한 뜻도 알기 어려운 ‘민족중심적 사고’란 용어가 여기저기서 사용되고 있다.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은 ‘반통일적, 냉전적 사고’로 치부되고 남북경협에 대한 설익은 기대와 장밋빛 전망도 경쟁적으로 나오고 있다. 이런 분위기 조성에 언론도 한 몫을 하고 있다. 가령 경의선 철도 복원에 관한 특집(18, 19일자)도 객관적이고 냉철한 분석이라기 보다는 정부산하 연구기관의 희망섞인 연구결과를 인용한 수준에 가깝다.

세계화의 룰은 남북관계에도 적용된다. 합리성 투명성 예측가능성을 결여한 대북정책이나 민족만 앞세운 남북화해는 이제 지속되기 어렵다. 현대그룹의 위기가 경제적 합리성을 결여한 금강산 투자에서 기인했고, 이것이 다시 한국경제의 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세계화 시대의 남북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추진돼야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세계화와 남북화해 시대에 언론의 냉정하고 균형잡힌 비판이 무엇보다 중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백진현(서울대 국제지역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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