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Business]갈수록 힘 잃은 유로貨

  • 입력 2000년 9월 19일 19시 14분


정부가 없는 화폐인 유로화는 거대한 실험이다. 그러나 정부가 없다는 그 이유 때문에 유로화는 바닥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얼마전에 로마노 프로디 유럽위원회 의장은 유로화를 뒷받침하기 위한 외환시장 개입을 선언했다. 그러나 시장은 하품을 했을 뿐이었다. 주식 거래인들은 프로디에게 힘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힘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유럽연합에는 중앙은행이 있지만, 유로화와 관련된 나라는 11개국이나 된다. 그런데 이 11개국 중 어느 곳도 유럽 전체에 대한 정책을 결정할 수 없고, 11개국 모두는 유로화와 관련된 현상에 대한 책임을 부인할 수 있다.

유로화가 계획되고 있을 때 이 계획을 옹호하던 사람들은 유로화가 강력한 통화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유럽 각국이 구조 개혁을 단행해서 융통성 없는 노동시장이나 비용이 많이 드는 정부의 연금계획 등이 결국 사라져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와 정반대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세금은 인하되고 있지만, 다른 개혁은 아예 이뤄지지 않거나 아주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 화폐 시장이 더 이상 어느 한 나라의 정책의 손을 들어줄 수 없기 때문에 각국 정부가 몸을 사리고 있는 것이다.

화폐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막는 방법 중의 하나는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개입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개입의 규모가 크고 국제적인 지지가 있어야 하며 신뢰할만한 정책변화를 꾀하는 정부의 후원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22억 달러 상당의 유로화를 사들이겠다는 유럽 중앙은행의 발표는 이 조건들을 하나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유로화가 지금과 같은 추세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정부가 필요하다. 그러나 유로화와 관련된 정부가 11개나 된다는 것은 어떤 경우에는 정부가 하나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http://www.nytimes.com/2000/09/15/business/15NOR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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