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四知(사지)

  • 입력 2000년 9월 19일 18시 06분


秘-감출 비 密-빽빽할 밀 俠-협객 협

滅-죽일 멸 薦-천거할 천 報-보답할 보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 세상에 秘密(비밀)이란 없다는 뜻이다. 요즘 같은 정보화 시대에 더 실감되는 말이다. 秘密을 영원히 지키기 위해 때로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수도 있다. 史書(사서)나 武俠小說(무협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滅口(멸구)’가 그것이다. 當事者(당사자)를 죽임으로써 秘密이 새는 것을 막는 방법이다. 어떤 경우 當事者 스스로가 秘密을 지키기 위해 自決(자결)하기도 한다.

'세상에 秘密이 없다'라는 말에 '四知'가 있다. 중국 東漢 安帝(안제) 때의 楊震(양진)은 博學多識(박학다식)했던데다 인격도 出衆(출중)해 뭇 사람들로부터 찬사와 恭敬(공경)을 한 몸에 받았던 인물이다.

東萊郡(동래군) 太守로 除授(제수)되었을 때다. 赴任(부임) 途中(도중) 昌邑(창읍)에서 날이 저물자 客舍(객사)에 머물게 되었다. 昌邑縣(창읍현) 縣令(현령)인 王密(왕밀)이 찾아왔다.

“太守님 오랜만에 뵙게 되었습니다. 지난번에 신세 많이 졌던 王密이옵니다”하며 슬그머니 황금 열냥을 내놓는 것이 아닌가. 전에 자신이 荊州(형주) 刺史(자사)로 있을 때 薦擧(천거)해 주었던 일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자신의 출세길을 열어 준 은인에게 보답하려는 것이었다.

楊震은 말했다. “물론 기억하고 있지. 하지만 나는 자네를 잘 알고 있네만 자네는 나를 아직도 잘 모르고 있구만.”

“아닙니다. 단지 報恩의 뜻으로 조그만 정성을 표시할 뿐입니다.”

“아닐세. 지난날 내가 짐작했던 대로 자네는 훌륭한 인물이야. 그러니 나에 대한 報恩이라면 자네가 더욱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지. 그것 밖에 더 있겠는가.”

이렇게 받기를 계속 거절하자 王密이 말했다.

“아니올시다, 太守님. 이 한밤중에 누가 있다고 그러시는 것입니까. 저와 太守님만 아는 일인데요. 그러니 제발…”

그러자 楊震이 버럭 화를 내면서 말했다.

“이 사람아, 자네와 나 둘 뿐이라니? 하늘이 알고(天知) 땅이 알며(地知) 자네가 알고(子知), 또 내가 알고 있네(我知). 그 무슨 소린가?”

王密은 얼굴을 들지 못하고 물러갔다. 楊震의 淸廉潔白(청렴결백)한 言行은 두고 두고 人口에 膾炙(회자)됐다.

鄭錫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478sw@mail.hanyang.ac.kr

<고진하기자>j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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