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교수의 법과 영화사이]어둠속의 비명소리

  • 입력 2000년 9월 14일 16시 48분


▽어둠속의 비명소리▽

주연: Meryl Streep(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 Sam Neil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에는 진귀한 동물이 많다. 캥거루, 코알라, 딩고...시드니 근교에 자리한 '민속동물원'이 비좁을 정도로 풍부하다. 올림픽 마크에 등장하는, 시드(Syd), 올리(Olli) 밀리(Millie) 삼총사도 이들 토착동물의 영상 합성품이다. 영화 「어둠 속의 비명소리」는 호주의 야생 개, 딩고(dingo)의 속성이 도마 위에 오른 재판을 옮긴 실화 작품이다.

마이클 체임벌린과 린디 체임벌린 부부는 세 아이를 거느린 독실한 신앙인이다. 마이클은 말일성도교회(Seventh Day Adventist Church)의 목사이기도 하다. 1980년 여름, 부부는 이웃과 함께 내륙 사막의 명승지 Ayer Rock에 캠핑여행을 떠난다. 단일 암석으로 세계 제일인 이 거대한 암석은 한때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aborigines)이 종교적 의식으로 섬기던 성지이기도 했다. 그 성지 아래서 해거름 무렵, 3개월 짜리 딸 아자리아를 텐트 속에 남겨둔 채 부부는 일행과 함께 바베큐 파티를 벌린다. 갑자기 어둠 속에서 비명소리가 나고 린디가 달려가 보니 딩고 한 마리가 텐트에서 나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보인다. 텐트 속의 아이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딩고가 내 아이를 물어갔다!" 부부는 물론 일행과 경찰이 함께 몇 날을 수색 작업에 나섰으나 아이의 행방은 묘연하다.

체임벌린 부부는 갑자기 세계 언론의 주목이 된다. 야생개의 습성과 관련하여 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딩고라는 동물은 결코 아이를 물고 사라질 수 없다는 주장이 득세하자 사건은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확대된다. 아이를 잃은 것도 하나님의 뜻이라는 이들 부부의 말에서 광신으로 인한 살인의 의구심에 제기된다.

즉 "광야의 제물"(sacrifice in the wilderness) 을 바치기 위해 린디가 자신의 아이를 죽였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아기의 잠옷이 캠프에서 3마일 떨어진 동굴 속에서 발견된다. 옷은 피범벅이고 몇 개의 구멍이 뚫어져 있었으나 수사과학연구소의 보고는 짐승의 타액이나 치아 자국이 없다는 것이다. 검시원의 공식보고 끝에 부부의 혐의가 벗겨진다. 예심 판사는 "추정, 의혹과 가십"(innuendo, suspicion, gossip)뿐, 그 어느 것도 범행을 입증할 가능성이 없다면서 사건을 종결한다. 그러나 타블로이드 황색저널리즘은 가라앉을 줄 모르고 악성루머가 계속 퍼졌고 경찰의 수사도 계속되었다.

재수사 끝에 경찰은 린디와 마이클을 각각 살인죄의 정범(正犯)과 사후종범(事後從犯, accessory after the fact)으로 기소한다. 검사에게는 몹시 힘든 사건이다. 목격자도 시체도 없고 린디가 자식을 살해할 명확한 동기를 입증하기 힘들다. 그리하여 고육지책으로 각종 법의학전문가의 감정증언을 동원한다. 딩고가 살지 않는 영국으로부터도 세 사람이 날아와서 딩고의 습성을 포함한 '과학적' 전문지식을 과시한다. 화끈한 것만 즐기는 언론의 입장에서는 이들 전문가들의 증언이 혼란스럽고 지루할 뿐이다. 한 전문가는 이들 가족의 카메라 케이스와 자동차에서 어린아이의 혈흔을 발견했다고 주장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콧물 자국일수도 있고, 심지어는 녹 찌꺼기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영국에서 날아온 카메론 박사는 아자리아의 잠옷에 묻은 작은 혈흔 반점은 사람의 손바닥 자국이며 그 손바닥은 린디의 것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아자리아의 옷에 짐승의 타액 흔적이 자국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이는 결코 딩고에게 물려 죽은 것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딩고 한 마리 살지 않는 영국사람이 딩고의 전문가라니, 영국을 숭상하는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이지만 이 문제에서만은 대영제국의 학문적 수준에 경의를 표하지 않는다. 또 다른 전문가로 등장한 스캇 박사는 옷에서 타액의 흔적을 발견했다는 정반대의 증언을 했다. 딩고의 야수성에 대한 증언은 더욱 첨예하게 대립한다. 그 누구도 딩고가 애완동물로 적합하다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야수성에 대한 자신의 주장은 양보하지 않았다. (영화는 실제의 재판에서 아자리아가 죽은 때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시기에 딩고가 자신들의 아이들을 공격했다는 두 사람의 증언을 생략했다.)

마이클과 린디가 증언대에 선다. 마이클은 자신의 변호사의 질문에도 부정확하고 혼란스런 답변을 한다. 린디는 검사의 질문에 대해 적극적이다 못해 공격적인 답변을 한다. 그녀는 자신이 딩고가 대가리를 흔들며 텐트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지만 아가리에 아이를 물고 있었는지는 기억할 수 없노라고 했다. 특히 그녀는 아자리아가 잠옷 위에 재킷을 입고 있었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런데 재킷은 발견되지 않았다.

지루한 법정공방이 끝나고 배심의 심리에 앞서 판사가 사건의 쟁점을 요약하며 무죄의 평결을 유도하는 요지의 의견을 제시한다. "변론종결요약"(summing up)으로 불리는 이 제도는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소송절차에 널리 애용된다. 이론적으로는 판사는 단순히 제시된 증거의 적법성과 경중을 요약하여 배심의 판단의 자료로 제공할 뿐이지만 사실상 판사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제시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이 판결의 경우도 그러하다. 이러한 관행은 강한 비난의 대상이 되어왔다. 비판의 핵심인즉 판사는 대체의 경우 검사 측에 유리한 방향으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판, 검사 사이에는 특수한 동업자 의식과 심리적 유착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검사와 변호사를 동일한 지위에서 열띤 공방전을 벌리게 하고 판사는 중립적인 심판(referee)의 입장에서 양 당사자의 공방전이 소정의 법 절차를 위반했는가 여부만을 판단할 뿐 직접 개입하는 것을 자제하는, 이른바 "대립당사자 제도"(adversary system)를 약화시키는 관행인 것이다. 같은 배심제도를 가지고 있지만 미국과는 결정적으로 다른 전통과 관행이다. 미국의 판사는 배심에게 제시할 증거를 선별할 고유한 권한을 보유하지만 결코 이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배심의 영역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균형을 벗어난 증거결정은 상급심에서 번복될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판사의 강한 암시와 유도에도 불구하고 배심은 두 사람에게 유죄평결을 내린다. 전혀 조리가 없는 마이클의 증언이 신빙성이 약했고 너무나도 당당한 린디의 태도에서 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슬픔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모른다. 린디는 영아살해죄의 경우 규정된 유일한 법정형인 중노동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마이클은 1년 6월 징역에 선고되나 감옥에서 난 딸아이를 포함한 세 아이의 양육책임을 고려하여 집행유예의 처분을 받는다.

몇 년 후 원주민수색대가 문제의 장소에서 추락한 등산가의 시신을 찾는 과정에서 아자리아의 재킷을 발견한다. 사건이 발생한 8년 후인 1988년, Northern Territory 주 법원은 원심을 취소하고 무죄를 확인했다. 린디는 세 아이의 품으로 돌아왔다. 아직 "진짜 엄마"에게 접근하기 꺼리는 딸아이에게 "아직 시간이 많다"라며 린디는 여유를 보인다. "무고한 사람만이 그 무고함이 얼마나 귀중한지를 안다." 라는 마이클의 독백과 함께 영화는 종결된다. 린디가 석방된 후에 체임벌린 부부는 주 정부를 상대로 자신들이 받은 정신적 고통에 대해 수백만 달러의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1992년 주의 법무장관은 린디에게 90만 달러, 마이클에게 40만 달러의 보상을 지급하면서 사건을 화해로 종결했다.

이 판결은 영국이 법조인의 가발(wig)과 함께 새 대륙에 이식한 콤몬로(common law) 제도의 핵심인 배심제도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드러낸다. 그 중 두 가지 측면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현대사회에서 언론이 배심에 미치는 영향이다. 이 사건은 세계의 관심이 집중된 사건이고 그만큼 황색 저널리즘의 해악을 절감케 한다. 7주 동안 계속된 이 재판의 전과정이 오스트레일리아 전역에 생 중계된 최초의 판결이기도 했다. 텔레비전 연속극(soap opera) 팬들에게 제공된 또 다른 연속극이 되었다. 법정 안에서 방청하지 못하는 기자들을 위해 법정 밖에 텔레비전 수상기를 설치하였다. 매번 법정 변론이 끝나면 피고인 부부는 물론 검사와 변호사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언론의 극성스런 심문에 시달려야 했고, 또 한편으로는 이들을 상대로 '플레이'를 해야 했다. 종교단체, 동물애호협회 등의 각종 사전 단체가 격렬한 시위를 벌렸고, 이 모든 것이 배심원의 평결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둘째, 이 사건은 배심제도 아래서 이른바 '전문가'의 역할을 다시 생각게 한다. 이 사건에서 배심원들은 법의학 전문가들의 증언에 별로 신뢰를 주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한 전문가는 문제의 혈흔은 타액이나 콧물, 심지어는 녹 찌꺼기일 수도 있다고 증언했고 다른 전문가는 살인무기로 제시된 린디의 재봉용 가위가 아자리아의 잠옷에 구멍을 뚫지 못하는 것을 보는 치욕을 겪었다. 또 다른 전문가는 딩고가 아이를 입에 물게 되면 턱이 부서진다고 주장했으나, 나중에 딩고가 인형의 머리를 통째로 무는 사진을 보고는 의견을 바꾼다. 그리하여 배심의 토론 과정(deliberation)에서 일부 배심원은 전문가의 증언은 너무나 혼란스럽기 때문에 아예 참고 대상에서 제외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배심제도는 국민주권을 신봉하는 국가에서 국민이 사법주권을 스스로 행사하는 민주적인 제도라는 점에서 빛이 난다. 어쩌면 배심제도의 한계는 민주주의 그 자체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안경환<서울대 법대교수> ahnkw@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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