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속! 두 문화]디지털 "몸은 죽어도 두뇌는 죽지 않아요"

  • 입력 2000년 9월 3일 18시 33분


▽김형찬 박사(37)=동아일보 학술전문기자

윤송이 박사(25)=매킨지사 경영컨설턴트▽

김형찬〓디지털 생명이 우리 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간다면 그들의 죽음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디지털 강아지인 시드니가 차에 치어서 기능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경우, 그를 그저 망가진 장난감처럼 쓰레기통에 버리면 될지, 아니면 학습과 경험이 축적된 두뇌만 떼어내서 다른 몸에 넣어 줄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할 거예요.

윤송이〓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큰 차이점은 디지털에는 원본과 복사본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죠. 이것은 디지털 생명에 노화 개념이 없다는 것을 의미해요. 몸이 낡으면 마치 옷을 갈아입듯이 몸만 교체하면 되니까요. 그러니까 일상적 의미의 죽음이란 개념을 디지털 생명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예요. 얼마 전 미국에서 ‘퍼비’라는 장난감 인형이 유행했을 때 한 아버지가 아이에게 퍼비를 사주며 “네 친구니까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 장난감 인형이 망가지자 아버지는 그것을 갖다 버렸죠. 그러자 아이는 아버지가 큰 잘못을 했다고 생각하고는 아버지를 경찰에 신고했어요. 아이는 퍼비를 정말로 살아 있는 친구처럼 생각한 것이죠. 퍼비의 죽음에 대해 아버지와 아이의 생각이 달랐던 거예요. 디지털 생명과 함께 살아갈 새로운 세대는 우리가 아날로그 세상에서 디지털 생명을 이해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생각을 할 거예요.

김〓장난감 로봇을 사주듯이 디지털 생명을 그냥 던져 줄 것이 아니라, 그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지에 대해 도덕적 기준이나 사회적인 합의를 만들어 가야겠군요. 아날로그 생명은 인간이 마음대로 만들 수 없지만 디지털 생명은 언제든 다시 만들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그 죽음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겠지요. 디지털 생명의 경우 그 몸의 교체와 상관없이 그 두뇌에 축적된 것을 계속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도 디지털 생명의 죽음을 진정한 죽음으로 인정하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될 거예요.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육체는 유한할지라도 정신은 영원하고 숭고하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지요. 사실 육체를 보완하거나 교체해서라도 오래 살 수 있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상당히 부러워 할 만한 일이죠.

윤〓오래 산다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닐 거예요.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Bicentennial Man)’을 보면 200년을 살았는데도 노화가 일어나지 않는 디지털 생명이 나와요. 그런데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 늙고 죽어 가는데도 혼자 죽지 않는 것을 괴로워하다가 아날로그 생명처럼 노화와 죽음을 선택하죠. 디지털 생명에게 죽음과 노화가 없는 것이 진정 그들을 위해 좋은 것인지는 다시 생각해 볼 문제예요.

김〓하지만 그것은 현재 인간의 정서를 기준으로 이야기를 설정한 것이 아닌가요? 인간들은 노화와 죽음을 극복하려고 수천 년 전부터 끊임없이 노력해 왔지요. 그런데 만일 모든 사람이 다 함께 오래 살 수 있다면 디지털 생명도 바이센테니얼 맨과 같은 고민은 하지 않을 거예요.

윤〓오래 사는 것만이 좋은 것인지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해요. 만일 인간이 천 년을 산다고 가정해 보세요. 인구문제도 문제겠지만 진화와 지식 전달의 효율성에도 문제가 생길 거예요.

김〓축적한 지식을 그대로 다음 세대에 전해 줄 수 있는 디지털 생명은 교육 시간을 단축시키면서 많은 지식을 쉽게 전수할 수 있지 않나요? 그런 방법을 이용할 수 있다면 겨우 백년밖에 살지 못하는 인간이 우주의 많은 지식을 다 알려고 발버둥치는 것을 안타까워했던 장자의 걱정도 기우가 될 거예요. 인간은 이십여 년의 교육기간을 거치고서도 백 년 정도밖에 살 수 없지만 디지털 생명은 수천년의 지식과 기억을 가질 수 있지요. 그렇게 본다면 디지털 생명을 창조하고도 디지털 생명보다 열세에 놓이게 될 인간이 이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도 문제가 될 거예요.

윤〓디지털 생명이 배운 것을 그대로 복사해서 다음 세대에 넘겨준다면 그것은 몸만 바뀐 것이지 정말로 세대 교체가 이뤄진 것은 아닐 거예요. 모든 자료를 그대로 머리 속에 복사해 주는 것이 글이나 그림 등의 자료를 다음 세대에 넘겨주고 간접적 자료로 활용하도록 하는 것보다 유리한 것만은 아닐 거예요. 그대로 복사됐을 경우 이전에 경험했던 것에 대한 기억 때문에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데 소극적이 될 수 있어요. 모험(exploration) 정신이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죠.

김〓지금도 젊은 세대와 기성 세대 사이에 세대차가 생기고 진보적 성향과 보수적 성향이 나뉘는 것을 본다면 정말로 사람들이 300살, 500살씩 살 경우의 사회는 지금에 비해 상당히 보수적이 될 수 있겠군요. 몸만 바뀐 채 500년, 천 년 동안 쌓인 지식과 경험이 뇌 속에 그대로 복사돼 있을 때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윤〓그렇게 본다면 오히려 일정한 수명을 가졌을 때 지식 축적이나 진화에 가장 적당할 수 있을 거예요.

김〓사회의 보수성에 답답해하는 사람이라면 인간의 수명이 짧아지기를 바래야겠지만 오래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누르기 어려울 거예요. 그리고 보면 인간의 수명을 지나치게 늘리려는 시도가 인류의 멸망을 자초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수명이 늘어난다 해도 교통 통신이 발달해서 인간의 활동 범위를 넓히고 세상과 우주의 다양한 현상과 문화를 경험한다면 기존의 사고방식에만 집착하지는 않을 거예요.

―끝―

<정리〓홍호표 부국장대우 문화부장>

hphong@donga.com

○시리즈를 끝내며

시드니는 아직 죽지 않았다. ‘그’가 시드니 올림픽에 간다고 가정할 경우 애완동물이라고 입국을 거부당할지, 아니면 기계라고 화물칸에 던져질지 생각해 보면 디지털생명에 대한 우리의 논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아날로그 세상에서 디지털 생명인 시드니가 설 자리는 마땅치 않은 것 같다. 김형찬 윤송이 박사는 애독자를 위해 못다한 이야기를 묶어 책으로 내겠다고 한다. 그런데 두 사람은 현재 각각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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