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라이드 위드 데블>,남북전쟁 배경의 사랑과 우정

  • 입력 2000년 8월 24일 18시 39분


우리말로 ‘악마와 함께 한 말달리기’쯤으로 해석될 ‘라이드 위드 데블(Ride with the Devil)’은 미국의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중에서 가장 독창적인 작품의 하나로 꼽힐만하다.

수백필의 말이 동원된 흙먼지 가득한 전투장면이나 실제 도시 하나를 깨끗이 불태운 스펙터클 때문이 아니다. 노예제 폐지를 위한 숭고한 전쟁으로 기억되는 남북전쟁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질풍노도같은 청춘들의 성장영화로 담아낸 아웃사이더적 시각 때문이다.

이 영화의 배경은 남북전쟁의 한복판에서 빗겨있던 미국 중부의 미주리주와 캔자스주. 하지만 서쪽의 캔자스가 북부를 지지한 반면 동쪽의 미주리는 남부편에 서는 바람에 두 주의 주민들은 이웃간에 죽고 죽이는 상잔의 비극을 겪어야 했다.

주인공 제이크(토비 맥과이어)는 북부를 지지했던 독일계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남부 편에 선 젊은이다. 그는 죽마고우인 잭(스킷 울리히)의 아버지가 북부 지지자들의 손에 살해되는 것을 목격하고 잭과 함께 미주리출신 남군 게릴라인 ‘부시웨커스’가 돼 캔자스출신 북군 게릴라 ‘제이호커스’와 맞선다.

어느덧 베테랑 게릴라가 된 두 젊은이는 북군의 추적과 한겨울 추위를 피해 깊은 산속에 숨어들면서 천천히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다.

제이크는 백인친구를 위해 북군을 향해 총을 든 흑인 홀트를 통해 노예제의 의미를 되씹고 잭은 미망인 수(주얼)를 만나 들뜬 사랑에 빠진다.

오락적 측면만 본다면 이 작품이 ‘와호장룡’을 위한 습작이었다는 리안감독의 고백은 틀리지않다. 하지만 이 영화의 참맛은 전쟁의 잔혹성과 그 패배감마저 딛고 일어서는 청춘의 내면적 성장을 그린 독특한 접근방식에 숨어있다.

제이크가 남부편에 선 것은 노예제에 대한 투철한 신념 때문이 아니라 익숙한 삶의 방식을 지키려는 본능적 선택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전쟁을 통해 북군의 젊은이나 흑인노예 모두 자신과 같은 사람이라는 점을 깨닫고 무의미한 살육의 악순환에서 자유로와진다.

영화 말미에 기르던 머리를 짧게 자르고 노예제만큼 경멸하던 결혼제도를 받아들이면서 “내 나이는 열아홉. 내 전쟁은 끝났다”고 읊조리는 토비 맥과이어의 연기는 싱그럽고 싱어 송 라이터에서 영화배우로 변신한 주얼의 당돌한 연기는 맛깔스럽다.

‘스크림’에서 섹시한 살인마로 등장했던 스킷 울리히나 ‘벨벳 골드 마인드’에서 중성적 매력을 뿜어냈던 조너선 라이 메이어스 등은 ‘악마’치곤 지나치게 매력적이다. 15세이상 관람가. 26일개봉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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