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대근/판사부인의 고발

  • 입력 2000년 8월 7일 19시 02분


법관은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해 한 법조인은 “법관은 모든 시간과 정력을 쏟아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점에서 미(美)를 찾아 헤매는 예술가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법관은 세속에 물들지 않는 ‘바보’여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지난해 사법연수원장을 끝으로 31년간의 법관생활을 마감한 가재환(賈在桓)변호사의 얘기다. 평소 법조인의 윤리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1998년 법관 수신서(修身書)라고 할 수 있는 ‘법관론’을 펴내기도 했다.

▷동양이나 서양을 가릴 것 없이, 예나 지금이나 법관에겐 특별한 윤리의식이 요구된다. 근대적인 법관 윤리규범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17세기 영국의 대법관 매듀헤일이 지적했듯이 그것은 다름 아닌 청렴성과 공정성일 것이다. 우리의 경우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김병로(金炳魯)선생과 ‘사도(使徒)법관’이란 별칭을 얻은 김홍섭(金洪燮)선생이 평생 고독과 청렴의 길을 걸은 법조인의 사표(師表)로 꼽힌다. 김병로선생은 생전에 “법관이 국민으로부터 의심을 받는다면 그 자체가 최대의 명예손상”이라며 법관들에게 ‘몸조심’을 당부하곤 했다.

▷최근 지방에서 근무하는 한 젊은 판사가 부장판사 등과 어울려 단란주점에서 스트립쇼를 보며 새벽까지 술판을 벌였고 이를 확인한 젊은 판사의 부인이 언론과 법원장 등에게 “법관들이 거듭날 수 있도록 도와달라”며 이 사실을 고발해 화제가 되고 있다. 당시 술자리에는 부장판사와 친분이 있는 한 사업가가 이른바 ‘스폰서’로 참석했고 부장판사 일행은 여자종업원들이 알몸으로 춤을 추는 단란주점의 ‘불법영업’을 즐기며 술을 마셨다는 것이다.

▷물론 법관도 사람이고, 사람이 과연 사람을 재판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중압감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보려고 술을 마실 수도 있다. 그러나 때와 장소는 가려야 한다. 한편에서는 “남편이 술을 좀 마셨기로서니…” 하고 부인의 속좁음을 탓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젊은 판사의 부인이 지적했듯이 법관들이 타락하면 이 사회는 갈 곳이 없다. 부인의 고발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송대근논설위원>dk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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