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삼윤의 문명과 디자인]이스터섬의 석상 '모아이'

  • 입력 2000년 7월 30일 19시 55분


내가 이곳을 찾은 것은 1000여개나 된다는 ‘모아이(moai)’를 보기 위해서였다. 이곳에는모아이를 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 칠레 산티아고∼라파누이 구간의 칠레항공은 늘 예약이 차 있다. 이곳을 가려면 적어도 6개월은 기다릴 각오를 해야 한다.

해안선을 따라 곳곳에 서 있는 모아이는 모두 바다를 등지고 있었다. 라파누이들은 모아이가 조상숭배 신앙의 흔적으로 저 세상으로 떠난 조상들이 후손들의 삶의 터전을 지키려고 내륙을 향해 서있다고 했다. 모아이는 어김없이 ‘아우(ahu)’라 부르는 사각의 제단(祭壇) 위에 세워져 있었다. 이마는 툭 튀어 나왔고 매부리코에다 입술은 얇았으며 무슨 이유에서인지 입은 꼭 다물고 있었다. 잘 기른 턱수염에 귀는 어깨 위에 닿을 정도로 길었다. 어디를 보든 모아이는 영락없는 코커서스 혈통의 정통 백인 모습이었다. 지금 이곳에 사는 라파누이를 닮았다고 볼 수 없었다. 이 모아이는 대체 누굴 닮았단 말인가. 귀는 왜 그다지도 크단 말인가. 나는 이 두 가지 물음에 매달리느라 라파누이에서의 4박5일을 모두 써버렸다. 그곳에서 부서지는 하얀 파도와 순백의 모래사장을 찾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는 더위 따윈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건장하고 자부심도 강한 라파누이들은 모아이를 일러 조상의 모습을 새긴 것이라 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조상과 관련지었다. “그렇다면 당신의 조상은 누구인가”하고 되묻자 폴리네시아의 마르케사스 군도에서 부하를 이끌고 이곳에 와 나라를 세운 호투 마투아 왕이라는 대답을 들려주었다. 섬 중앙에 ‘아우 아키비’라 부르는 7체의 모아이가 그 증거라는 것이었다. 아우 아키비는 여느 모아이와는 달리 해안가도 아니고 내륙에, 그리고 바다를 향해 있는데 그것은 그가 떠나온 바다를 가리키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이에 대해 노르웨이의 인류학자이자 탐험가인 토르 헤이에르달(1914∼ )은 남미 대륙에서 고대문명을 일으킨 콘티키 비라코차 일행이 이곳으로 건너와 나라를 세웠다며 폴리네시아설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전설대로 남미의 발사(Balsa)나무로 뗏목을 만들었고 오직 바람과 해류만을 이용해 페루에서 폴리네시아의 파투 히바 섬까지 101일간의 항해를 성공적으로 끝낸 바 있다(그는 그 뗏목을 ‘콘티키’라 불렀다). 그래서 라파누이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도 폴리네시아설과 남미대륙설이 대립하고 있다.

이에르달은 라파누이의 기원은 물론 모아이의 기원과 제작과정, 운반, 설치에 대해서도 강한 호기심을 나타냈다. 55∼56년 사이엔 직접 조사요원을 이끌고 이 섬에서 조사연구 작업까지 벌였다. 오랫동안 이 섬을 지배했던 장이족(長耳族)과 그들의 질곡을 견디어내야 했던 단이족 사이에 치열한 세력다툼이 있었고 결국 단이족이 이겨 모아이 제작이 중단되었다는 사실을 비롯해 모아이의 배 부분에 뗏목 형상이 새겨져 있는 것을 알아냈다. 그러나 정작 모아이의 귀를 왜 크게 만들었으며 나아가 라파누이들이 자신의 귀를 길게 늘어뜨려서는 장이족 행세를 하려 했는지에 대해서는 속시원한 설명을 내놓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는 79년 인도양 탐사에서 아주 우연한 계기에 그 힌트를 찾아냈다. 그때 인도의 로탈 유적과 인도양 상의 작은 섬 몰디브를 탐사하고 있었는데 그 두 곳에서 긴 귀를 가진 불상을 발견했던 것이다. 당연히 모아이의 긴 귀를 떠올린 그는 ‘몰디브의 수수께끼’란 책에 이렇게 적었다. “불상의 주인공인 부처는 기원전 6세기의 인물로서 장이의 관습은 부처의 탄생 이전에도 존재했다. 부처, 아니 역사적 인물 싯다르타 고다마는 힌두 왕가에서 태어났으며 그는 힌두 사회의 오랜 관습에 따라 귀밑에 무거운 추(귀걸이)를 달아 장이를 했을 것이다.”

즉 장이는 귀족 또는 지배계급임을 알리는 표시 내지는 상징이라는 주장을 폈다. 사실 황금유물이 쏟아져 나온 잉카, 스키타이, 박트리아(아프가니스탄 북부지방), 트라키아(고대불가리아왕국), 신라 등에선 금관이 나오지 않은 경우에도 화려한 귀걸이는 반드시 나온 것만 보더라도 긴 귀 또는 귀걸이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왕족 또는 귀족의 신분을 드러내는 표시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예술의 성취는 바라는 바의 표현에 있다”는 독일의 인류미술사가 보링거의 말처럼 미술은 그때그때 인간이 추구한 바를 훌륭하게 표현해왔다. 장이와 같은 신체변형이나 펜던트 형태의 귀걸이(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견훤이 달고 있는) 같은 장식 또한 그런 맥락에서 태어난 것이리라.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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