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칼럼]박승관/인터넷만으론 정보사회 못이룬다

  • 입력 2000년 7월 28일 19시 18분


이 시대의 주제는 한마디로 정보기술(IT)로 집약된다. 우리는 오래 전부터 IT를 21세기의 국가적 꿈으로 삼고 있다. 언론매체들은 하루도 거름 없이 IT 관련 뉴스를 보도하고, 지식정보사회의 꿈을 전파, 선전하고 있다. 이제 IT와 지식정보사회는 전세계적 핵심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주에 열린 선진8개국 정상회의는 'IT헌장'을 채택, 선후진국간의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 즉, 정보격차의 해소를 촉구했다.

이에 발맞춰 동아일보는 22일자에서 우리 학생들이 컴퓨터를 하루 몇 시간씩 이용하는지를 기준으로 지역간 디지털 디바이드를 우려 섞인 논조로 보도했다.

그러나 컴퓨터가 놓이고 인터넷이 깔리면 바로 지식정보사회가 온다는 생각은 도식적인 믿음에 불과하다. 과연 우리사회가 참된 지식정보사회로 진입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단순히 IT와 인터넷 보급률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더 핵심적인 문제는 컴퓨터와 인터넷을 가지고 사람들이 어떤 용도로, 어떻게 사용하는가 하는 것이다. 기술이 아니라 정보가, 양적 지표가 아니라 질적 쓰임새가 중요하다.

우리 국민이 과연 '정보'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며, 어떤 수준의 정보를, 어느 정도로 열심히 추구하고, 어떻게 활용하는가 하는, 국민 일반의 멘탈리티와 '가슴의 습관(habits of the heart)'이 중요하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는 국가 계층 지역간 디지털 디바이드뿐만은 아니다. 한가지 더 긴요한 것은 IT와 전통적 인쇄매체인 '책' 사이에서 발생하고 있는 매체간 디바이드이다.

가령 우리나라의 IT 보급은 선진국에 필적할 만한 수준에 도달했지만, 한국민의 독서량은 일본 등 선진국 국민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조사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생들이 컴퓨터를 사용하는 시간이 증가하는 만큼 독서시간은 그에 반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IT가 책과 함께 가는 것이 아니라 책을 몰아내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책을 읽는 사람은 컴퓨터를 '정보적'으로 쓸 수 있지만,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컴퓨터를 '비정보적'으로 쓰는 경향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IT가 오히려 지식과 정보를 몰아낼 수 있는 것이 현대 지식정보사회의 역설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지식정보사회를 이루려면 '너도나도 IT' '자나깨나 인터넷'을 합창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오늘날 보다 필요한 것은 IT 캠페인보다는 오히려 독서 캠페인일 수 있다. 책 없이 인터넷만으로 선진국을 이룰 수는 없다. IT만 있고 책이 없다면, 우리의 지식정보사회 실현의 꿈은 부화할 수 없는 무정란(無精卵)이 되고 말 것이다.

이런 뜻에서 동아일보 22일자 '책의 향기'섹션은 한편의 시대적 주술(呪術)처럼 우리 사회를 획일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IT신화에 맞서 그나마의 균형을 추구하려 한 노력으로 평가할 만하다.

박승관<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