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득헌의 스포츠세상]세계축구의 독과점 구조

  • 입력 2000년 7월 24일 19시 09분


‘언 페어(unfair), 언 페어, 우리는 속았다.’ 2006년 월드컵 개최지가 결정된 다음날인 7일 아침 출근길 라디오에서는 남아프리카공화국 국민의 울음 섞인 소리가 흘러나왔다. 독일이 개최지로 선정된 게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렇지만 왠지 개운하지는 않았다. ‘그래, 이번에는 남아공이 됐으면 좋았을 걸’이란 말이 입가를 맴돌았다.

그런 심정은 혼자만의 것은 아니었나 보다. ‘월드컵이 유럽과 남미의 잔치라고 해도 그렇지. 2002년에는 아시아에서 열리지 않는가. 아프리카에도 기회를 주어야지. 몇 표 차이로 남아공이 떨어졌어’라는 식의 얘기를 여러 군데서 들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지극히 감정적인 것이었다. 남아공이 주장하는 투표의 불공정성이 불거지기를 은근히 바라는 마음 같은 것이었다고나 할까. 사실 남아공 주장의 근거는 2차 투표에서 뉴질랜드 위원이 압력을 받아 기권함으로써 탈락했다는 것인데 압력여부가 밝혀질 일은 아니었다. 또 남아공이 투표 위법성을 들어 소송 제기를 검토한다고 했지만 크게 신경 쓸 일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남아공 탈락은 내게 왜 그런 느낌을 일게 했을까. 숫자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선은 개최지 통계이다. 1998년 대회까지 16번의 월드컵은 대륙별로 보면 유럽에서 9번, 중남미에서 6번, 북미에서 1번 개최됐다. 개최국별로는 13개국이었는데 프랑스, 이탈리아, 멕시코에서는 2번씩 열렸다. 2002년에는 한국과 일본에서 열리지만 2006년을 포함하면 18번의 대회 중 10번이 유럽의 차지이다. 기분이 상쾌해질 수 있겠는가.

또 하나는 월드컵 전적에서 유럽과 남미를 빼고는 할 말이 별로 없다는 통계이다. 유럽과 남미가 8번씩 우승을 나눠 가졌다. 브라질이 4번, 이탈리아와 서독이 3번씩 우승하는 등 우승 경험 국가가 유럽 4개국과 남미 3개국뿐이다. 축구의 독과점 구도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개최지 다양화는 유럽 남미축구 따라잡기에도 도움이 되리란 생각이 들 법하지 않은가. 결코 쉽게 될 일은 아니지만…

국제축구연맹은 다음달 초 집행위원회에서 블래터회장이 제안한 월드컵의 특정 대륙 편중방지 방안 등을 논의한다고 하니 일단 다행한 일이다. 문제는 실력인데 아프리카에서는 ‘프랑스가 아프리카 출신 선수 없이 월드컵과 유럽선수권에서 우승했는가’라며 2006년 월드컵 무대를 휩쓸자는 다짐도 나오고 있다. 2002년 월드컵에서는 조직위도 잘해야겠지만 정말 한국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내야한다. 힘과 실력이 있으면 남의 말을 투정으로 돌려버릴 수 있는 게 세상이다.

윤득헌<논설위원·체육학박사>dhyo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