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회예산심의권 '물'로 보나

  • 입력 2000년 7월 23일 19시 03분


국가의 권력 작용을 입법 사법 행정기관에 분산토록 한 3권 분립의 근본 취지는 힘의 치우침을 막자는 데 있다. 3개 기관 중 특히 정책 집행을 담당하는 행정부는 권력을 오남용할 가능성이 가장 크기 때문에 그 수단이 되는 예산의 국회 심의 기능이 법제화되어 있다.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권력의 견제는 무의미해지고 국회의 존립 가치는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런 차원에서 지난 주말 추경예산 중 일부를 선(先)집행한 정부의 태도가 문제돼 국회 예산결산특위 전체회의가 파란을 겪은 것은 눈여겨보아야 할 중요한 사안이다. 총 추경예산규모 2조4000억원에 비할 때 선집행된 1262억원은 극히 작은 규모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국회가 사전에 심의, 허락하지 않았는데 정부가 멋대로 예산을 집행하고 나중에 통보하는 행위가 거리낌없이 이뤄진다면 그것은 국민의 대표기관을 경시하는 태도로 쓴 돈의 용도나 규모에 관계없이 크게 잘못된 일이다.

국회에 새로 생긴 사무처 예산정책국은 그런 사실도 모르고 정부의 추경예산안을 그동안 열심히 분석하고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에는 군 정보화 교육을 위한 예산 320억원의 경우 국방부의 민간자원 활용을 극대화하겠다는 자체 방침에 어긋난다며 재고를 요청했는데 이 돈 중 일부는 이미 집행된 것으로 밝혀졌다.

교육부 예산과 보건복지부 예산 일부도 이미 국회의 심의나 동의를 받지 않은 채 집행된 것으로 드러나 해당 장관들이 의원들에게 사과했다. 공공근로사업비의 경우 국회가 지난번 2000년 본예산 심의 때 700억원을 삭감했던 것인데 정부가 이번에 같은 항목으로 삭감됐던 것의 두 배나 되는 액수를 추경에 올린 것도 국회를 얼마나 ‘물’로 보고 있는지 설명해 주는 사례다.

특히 행정부 내에서 사전에 견제를 해줘야 할 기획예산처가 해당 부처에 선집행을 합의해줬다는 것은 정부의 자체 통제 기능이 가동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런데도 진념기획예산처장관이 국회의 추궁에 흔쾌히 승복하지 않고 마지못해 ‘부적절한 집행이었다’는 수준의 반응을 보인 것은 매우 유감스럽고 ‘부적절한 태도’라 하겠다.

정부 당국자들은 관행처럼 되어 온 일들인데 왜 지금 새삼 문제인가라는 반응이지만 시대가 바뀌면 잘못된 관행도 고쳐져야 한다.

16대 국회가 새로 출범하면서 예산 심의 기능을 강화해 조직을 개편하고 전문인을 영입한 것은 긍정적 변화다. 그러나 이보다 더 선행돼야 할 시급한 과제는 행정부가 과거의 타성에서 벗어나 기본을 지키려는 자세를 갖도록 변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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