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에너지의 대안을 찾아서'

  • 입력 2000년 7월 21일 19시 07분


1755년 11월 1일 포르투갈의 리스본에 엄청난 규모의 대지진이 일어났다. 수많은 사상자를 낸 끔찍한 사건이었다. 이런 종류의 사고 때면 늘 그렇듯이 많은 리스본 주민들도 그들이 착하다고 믿는 아까운 사람들의 죽음에 신의 존재를 의심했다. 이 사건이 훗날 흄의 ‘눈먼 자연’의 개념과 무관하지 않다는 평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자연의 선택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그래도 덜 억울하다고 생각한다. 진짜 개죽음은 우리 스스로 개발한 문명의 이기에 무참하게 당하는 경우일 것이다.

미국의 스리마일 아일랜드와 러시아의 체르노빌에서 벌어진 원전사고가 바로 그런 경우다. 보이지도 않는 방사능에 본인은 물론 자손 대대로 저주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억울한 일이다.

현재 우리 인류가 하루에 태우는 화석연료의 양은 지구가 천년 동안 축적한 양을 능가한다. 하지만 에너지원의 고갈이 멀지 않았다는 두려움보다도 무분별한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벌어지는 범지구적 기후변화가 인류의 생존 그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원자력발전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논리가 정당화해 우리 나라는 현재 원자력 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 중의 하나가 되었고 이제 그 후광을 북한 땅에도 길게 드리울 즈음이다.

과학사학자 이필렬은 ‘에너지 대안을 찾아서’에서 이 문제를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하라고 경고한다. 영월댐 계획의 백지화와 함께 이제 수력발전도 낡은 시대의 유물이 되고 있는 마당에 원자력마저 막으면 전력공급에 막대한 지장이 있다고 강변하겠지만 원자력발전은 대형사고의 위험성과 폐기물 처리의 어려움으로 볼 때 결코 우리가 갈 길이 아니다.

대안은 분명히 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풍력, 조력, 태양열 등을 이용하는 기술을 개발하여 원자력 의존도를 낮추고 있다. 전세계에서 간만의 차가 가장 큰 해안을 갖고 있는 나라가 조력발전에 눈도 깜박 하지 않는 걸 어리석음이 아니고 무엇으로 설명하랴.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에너지의 거의 절반은 대기권에 의해 반사되거나 흡수되고 나머지 반 정도가 육지와 물에 흡수된다. 이 중 식물이 광합성에 이용하는 비율은 1%도 되지 않는다. 그 1%로 지구의 생태계가 유지되고 있는데 지표에 도달하는 에너지(50% 정도)의 일부만이라도 우리가 사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엄청난 전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물론 태양열을 이용한다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확실한 대안이 또 있을까.

최재천(서울대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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