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장원석/얻은 것 없는 '마늘 협상'

  • 입력 2000년 7월 18일 18시 33분


마늘 생산 농민의 동요와 분노가 심상치 않다. 한중 마늘협상에 관심을 가진 국민의 입장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더욱이 제2의 우루과이라운드(UR)라고 불리는 세계무역기구(WTO) 협상과 금년 말까지 타결을 눈앞에 두고 있는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된 통상 당국자의 발언들이 농민의 심기를 자극해 오던 차에, 마늘협상까지 실망스럽게 타결됐으니 어쩌다 우리 정부의 통상정책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심히 걱정된다.

마늘협상 타결 과정은 더욱 아이러니다. 중국 마늘이 과도하게 수입되어 국내 농가의 피해가 심해지자, 재정경제부가 긴급관세 부과조치를 내린 것은 정당한 것이었다.

이는 준사법기구인 산업자원부 무역위원회의 결정에 의한 것으로서, WTO 규정에 합치됨은 물론 이미 WTO에 정식 통보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통상교섭본부는 몇 달 지나지도 않아 정면으로 이를 뒤집었다. 이는 두 가지 점에서 명백하게 잘못된 것이다.

첫째, 정부 부처 사이의 상반된 입장으로 인하여 일관성 없는 정책, 신뢰할 수 없는 정부라는 인상을 보여준 것이다. 협상 담당자들이야 자신의 소신에 따라 최선을 다했다고 하겠지만, 국민의 입장에서는 이랬다저랬다 하는 정부를 어떻게 따르며, 농민의 입장에서는 생존권 차원의 피해를 보게 되는데 그 책임은 어떻게 누가 질 것인가의 문제이다.

둘째, 통상교섭본부가 준사법기구 성격의 무역위원회 결정을 뒤집은 것은 국제기준과 관례를 무시한 독선과 독단이 아닌가 하는 문제이다. 물론 중국은 아직 WTO에 가입하지 않았으니 예외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중국은 WTO에 가입하기로 결정되어 있으므로 WTO의 규정과 관례를 따라야 할 입장에 있다. 따라서 이 점을 중국에 이해시키는 것이 온당한 일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상 중국은 우리 정부의 마늘수입 제한조치가 WTO 규정에 따른 합법적, 합리적 절차에 의하여 취해진 것이었음을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다만 휴대전화와 폴리에틸렌 수입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하면, 우리나라가 즉각 굴복할 것이라는 고도의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이번 한중 마늘협상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원칙과 국제관례를 무시하고 힘의 논리에 의존하는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되면, 앞으로 전개될 국제협상에서는 어떻게 우리의 국익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경제적 계산이라는 측면에서도 그렇다. 마늘 수입액이 1500만달러, 휴대전화와 폴리에틸렌 수출액이 5억달러(약 6000억원)이지만, 마늘 수입으로 인한 파급 피해액은 3500억원으로 무역위원회가 추정한 바 있다. 나아가 쌀 다음의 수입원인 1조원에 이르는 마늘 생산액과 42만 농가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또한 중국은 4000만달러에 불과한 우리나라의 휴대전화 기종을 다른 나라의 것으로 대체 수입하게 되면 부담이 늘어나고, 폴리에틸렌도 중국 자체의 높은 수요와 무역선 변화에 따른 부담 때문에 수입하지 않을 수 없는 약점이 있었다. 국제협상은 총성 없는 전쟁이므로 고도의 전략과 완급을 조절해야 하는데, 지나친 단순논리와 전략 부재를 노정한 감이 없지 않다.

정부는 1500억원의 예산을 확보해 농협과 계약재배한 물량을 제외한 전량을 농가 희망대로 수매하여 피해를 최소화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피해액의 절반에도 못미친다. 또한 정부 예산은 국민의 세금이기 때문에 피해액 전액을 보전해 줄 수도 없는 것이다. 돈은 기업이 벌고 부담은 국민이 지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역협상은 사후대책을 고려하는 것보다는 애당초 사전에 철저하게 대비하고 사생결단으로 임해야 하는 사안이다. 통상당국이 협상창구의 일원화라는 미명 하에 타부처의 전문관료들을 제쳐두고 독주하는 행태, 농민의 한숨과 피해는 보지 않고 단순한 비교우위의 화신이 된 것 같아 참으로 답답하다.

장원석(단국대 교수·WTO국민연대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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