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50년만에 온 소식

  • 입력 2000년 7월 17일 19시 00분


북한 적십자회가 보내 온 8·15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명단은 냉전 이데올로기가 갈라놓은 이산가족의 애절한 사연들을 속속 확인시켜 주고 있다. 오랜 세월 생이별의 아픔을 이겨낸 재회의 반가움이 그들에게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서기를 기대한다.

재회를 앞둔 이산가족들의 표정만 보고도 우리는 이념과 체제를 뛰어넘는 것이 혈육이며 가족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남북으로 갈라져 50년동안 소식을 전하지 못하던 200여 가족들이 생사 확인과 상봉의 기쁨을 갖게 된 것은 남북정상회담이 가져온 최초의 가시적 성과라 할 만하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는 월북자 가족들에 대한 유무형의 차별 대우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월북자나 부역자 가족으로 알려지면 우선 기피하고 보는 풍조가 없지 않았다. 이번 북한측이 통보한 이산가족 명단은 1명의 재일동포 출신을 제외한 전원이 월북자로 돼 있다. 정부가 이를 전면 공개한 만큼 우리 사회에 과거의 연좌제적 사고가 아직도 남아 있다면 이번 기회에 완전 청산해야 할 것이다.

이번 북측 상봉 신청자 명단에 월남자 가족은 들어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냉전시대에 남한 사회가 월북자 가족을 냉대했듯이 북한에서도 월남자 가족에 대한 불이익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북한 당국도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월남자 가족에 대한 족쇄를 ‘통 크게’ 풀어 주기 바란다.

북측이 제시한 명단에는 세계적 화학자로 북한의 주체섬유라는 비날론을 발명한 이승기 박사(전남 담양 출신)의 부인 황의분씨(경북 김천), 해석수학의 권위로 북한의 인민과학자 칭호를 받은 조주경 김일성대교수(경북 영양), 이두(吏讀)연구의 태두 유열씨(경남 산청), 그리고 조선화의 거장 정창모 화백(전북 전주)과 북한 최고의 성우 박섭 인민배우(서울) 등이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끈다.

특히 이들은 고향에서 잘 알려진 유명 학자와 예술가들이다. 해방 직후나 6·25전쟁 당시 월북자중에는 청년 지식인 예술가들이 많았다. 이들이 북한에 가서도 과학기술과 국학 및 예능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낸 것으로 보인다.

이산가족 상봉은 앞으로 지속적으로 이행되어야 한다. 보다 많은 이산가족이, 고령으로 세상을 뜨기 전에 재회할 수 있도록 하루빨리 면회소가 설치돼야 한다. 이번 1차 신청자 중 생사가 확인된 가족이 각각 100명을 넘더라도 모두 만날 수 있도록 남북한 당국은 적극적이고 자상한 배려를 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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