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홍의 e컬처]왕따들의 해방구, 인터넷

  • 입력 2000년 6월 29일 19시 27분


‘왕따를 지키는 소년소녀활빈단’. ‘왕’따돌림을 당해 마음에 상처를 입은 친구들을 돕자며 일산의 중학생 3명이 의기투합해 결성한 소년소녀활빈단은 “희망찬 21세기의 주인공들을 왕따의 늪에서 건져내자”는 취지로 회원수도 21명으로 정하고 왕따당하는 친구와 점심같이 먹기, 등 하교길 동행하기, 말벗 돼주기 등의 실천활동을 펼친 바 있다고 한다.

▼한지붕 아래서도 따돌림▼

그러나 여전히 ‘왕따’는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학교는 물론 한 집안 식구들 사이에서도 왕따가 있다. 직장에서도 특정인의 실수에 대해 부서원들이 자기들만의 언어로 귀엣말을 주고받으며 웃거나, 특정인을 회식이나 모임에서 제외하거나, 복장 말씨 행동 등을 흉보거나, 직무와 관련된 정보를 제공해주지 않거나 아예 무능력자나 바보로 취급해 상대안하기 등 고질화된 ‘왕따’현상이 적지않다.

그렇다면 인터넷세상 안에서도 왕따가 있을까? 물론 있다. 인터넷의 왕따를 흔히 ‘따티즌(TTatizen)’이라고 부른다. 왕따를 당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알파벳 ‘더블 티(TT)’로 형상화해 ‘네티즌’과 합성한 말이다. 이들은 흔히 네티즌 사회의 룰과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게시판이나 채팅방에서 엉뚱한 글을 올리다가 따돌림을 받는 경우다.

▼'따티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은 ‘왕따들의 해방구’ ‘왕따들의 천국’임에 틀림없다. 우선 ‘왕따’들만을 위한 대화방이 있어 ‘따티즌’으로 내몰릴 위험없이 채팅을 할 수 있다.(http://chat.interform.co.kr/king/chat.htm) 특히 ‘왕따천국’ 사이트(http://210.112.1.60/cgi-support/board/webboard.cgi?wb〓huehue/gesi5)에서는 게시판을 통해 다양한 왕따경험을 나누며 왕따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기도 한다. 좀더 전문화된 ‘왕따 클리닉’ 사이트(http://my.netian.com/∼bong/)는 그런 노력을 보다 세련화해 왕따현상을 심리학, 사회학, 정신분석학적인 측면에서 조망해보고 왕따사례와 통계자료를 통해 왕따현상에 대한 경각심을 환기시켜주기도 한다. 또 왕따예방을 위해 자신의 왕따지수를 재보고 ‘왕따지기’로부터 실시간 왕따상담을 통해 왕따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 등을 제안받을 수도 있다.(http://my.netian.com/∼bong/we/sangdam.html)

▼전용 홈펭이지 생겨▼

그런가 하면 자칭 왕따그룹 총수를 자임하는 김모군(25·모대학 국문학과 4년)은 “늘어나는 실직자, 백수들, 따돌림 당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 사회에서 없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왕따 홈페이지(http://members.namo.co.kr/∼echeum/bestsite/best-3.html)를 열기도 했다.

모름지기 ‘왕따’란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는데서 나온다. 차이를 용인하지 못하는 자폐적 사회가 퍼뜨리는 전염병이 곧 ‘왕따’다. 종래의 아날로그시대에는 차이가 차별의 근거였지만 새로운 디지털시대에는 차이가 존중받고 대접받을 근거다. 차이가 곧 가치다. 차이가 자연스럽게 용인되고 수긍될 때 비로소 우리 사회의 ‘왕따’바이러스도 퇴치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인터넷은 ‘차이의 제국(the empire of difference)’이다. 왕따들이여 인터넷으로 오라. 맘껏 자신의 차이를 드러내라. 그리고 자유로움을 만끽해보라. 더 이상 왕따는 없다.

다음회 주제는 ‘인터넷 동창회’

정진홍(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커뮤니케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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