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증시]'경기 연착륙'에 발목잡힌 美증시

  • 입력 2000년 6월 14일 19시 33분


‘여우 피하려다가 호랑이 만난 격.’

요즘 미국 투자자들의 처지가 꼭 이렇다. 미국경제는 91년4월 이후 110개월동안 꿈같은 호황을 누려왔다.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경기과열을 식히기 위해 작년 6월부터 금리를 여섯 번이나 올렸다. 하지만 경기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마침내 5월 26일 4월 실업률 예상보다 높다는 발표가 나오자 월가는 환호했다. 실업률 상승은 경기 둔화와 나아가 금리를 더 올릴 필요가 적어졌다는 것을 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경기둔화라는 게 만만치 않은 대상이라는 사실이 입증됐다. 8일 프록터앤갬블이라는 대형유통업체가 2·4분기 매출이 기대에 못 미칠 것이라는 발표로 주가가 7.07%나 떨어졌다. 첨단기술주도 예외가 아니었다. 12일 시트릭스시스템스라는 소프트웨어업체가 역시 2·4분기 수익전망치를 맞추지 못할 것 같다는 발표로 주가가 46%나 곤두박질쳤다. 마이크로스트래티지라는 회사는 미국 증권사인 메릴린치가 실적호전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자 37%나 하락했다.

이쯤되자 ‘연착륙(軟着陸·soft landing)’이 별로 ‘부드러운’ 게 아니라는 점이 알려졌다. 역사를 거슬러올라가면 주가의 천적은 금리인상이 아니라 경기둔화라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80년 이후 미국에서 일련의 금리인상이 8번 있었는데 이로 인해 주가가 떨어진 것은 단 한번 밖에 없었다. 나머지 7번은 금리를 올렸지만 경기가 워낙 좋다 보니 주가가 지칠 줄 모르고 올랐던 것.

미국경제가 연착륙하려면 경기가 어느정도 둔화돼야 할까. 미국에선 인플레이션 우려 없는 성장률(잠재성장률) 수준을 3∼3.5%로 본다. 지금 실제 성장률은 6% 수준. 따라서 올해 4.5% 안팎을 경유해 내년에 3∼3.5%로 가면 연착륙이요, 올해말에 갑자기 3∼3.5% 수준으로 가면 경착륙이 된다. 그런데 미국경제가 어떻게 될지를 알려주는 지표가 아직은 없다. 이런 불확실성 때문에 미국증시는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는 것이다. 이러니 미국투자자들이 그날 그날 발표되는 거시경제지표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미국시간으로 14일엔 5월 소비자물가지수가 발표된다.

<이철용기자>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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