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돈구/상호신뢰로 '평화의 나무' 심자

  • 입력 2000년 6월 9일 19시 02분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불과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민족 분단 50년사에 있어서 새로운 전환점이 되기에 충분한 일이라는 데 논란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최근 정상회담을 앞두고 각계각층에서 계속되고 있는 여러 구상과 제안을 살펴보면 대립과 갈등을 화해와 협력, 평화공존으로 만들어가되 신중하게 접근하고, 쉬운 일부터 하나 하나 풀어가야 한다는 성숙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남북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호 신뢰다. 그동안 남북 양측에서 무수히 많은 제안과 제의가 있었지만, 상대의 주의 주장을 진지하게 고려하기보다는 항상 들어오던 ‘뻔한 말’로 단정지어왔던 것이 남북관계의 현주소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계속되고 있는 남북간의 평행선을 조금씩 가깝게 만드는 방법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 답이 있을 수 있겠지만 산림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의 입장에서 접근해 보고자 한다.

첫째, 우리가 하고 싶은 제안을 하기보다는 그들이 받아들이고 싶은 제안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96년, 98년, 99년에 경기북부지역에서 발생한 홍수 직후, 큰비 피해를 초래한 임진강의 빗물 유입량 증가는 북한 지역의 극심한 산림파괴 때문일 가능성이 크며, 이 지역의 종합적인 홍수관리는 남한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라 우리 정부가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임진강 북쪽 유역을 공동 관리할 것을 북측에 제안한 일을 기억해 보자.

올바른 지적일 수는 있지만, ‘너희 때문에 우리가 홍수 피해를 보고 있으니 군사지역을 개방하고 공동관리를 하자’는 말로 들리지 않았을까? 안타깝기는 하지만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한 그들의 반응이 예상 밖의 일은 아니었다.

둘째, 정치적 이해 관계보다 남북간의 동질성을 찾고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올 4월 백두대간을 거대한 숯덩어리로 만든 강원도 동해안 지역의 대형산불을 우리는 잊지 못한다. 최근 북한측 인사의 말에 의하면 금강산 지역에도 산불이 발생했으며, 다행히 해안쪽으로 바람이 불어 큰 피해는 나지 않았다고 한다.

금강산에 큰불이 났을 때, 그냥 안타까워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측 산불진화 헬기가 북측 군용기의 신속한 유도를 받으며 현장에 투입돼 진화작업을 벌일 수 있는 날을 상상해 보자.

마찬가지로 설악산에 큰불이 났을 때 북측 헬기가 투입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아마도 남북 모두 산림보호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는 상호신뢰가 형성된다면, 대형 산불로 번질 급박한 상황에 부닥쳤을 때 상대방의 헬기 투입 제안에 대해 정치 군사적 득실을 계산하기보다는 우선 양측의 산불을 막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될 것이다.

북한의 훼손된 산림을 복구하기 위해 지원하고 있는 민간단체인 ‘평화의 숲’은 99년 창립된 이후 560만그루의 묘목과 종자, 임업장비를 지원하고,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남북 임업전문가 회의를 개최하는 등 지금까지 산림 분야에서 꾸준하게 교류협력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별한 마찰이나 갈등 없이 활동해 온 것은 아마도 산림문제의 중요성에 대한 남북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틀 후면 남북의 정상이 평양에서 만나게 된다.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남북 관계의 출발을 다짐하며, 남북의 정상이 함께 평화의 나무를 기념식수하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7000만 겨레의 통일염원은 평화의 나무를 무럭무럭 자라게 할 밑거름이 되어 통일 한반도라는 영광의 열매를 맺게 할 것이다.

이돈구(평화의 숲 상임운영위원장·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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