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석호/검찰의 부적절한 '엄포'

  • 입력 2000년 5월 30일 20시 30분


지난해 7월14일 인천지검은 경기도지사 임창열(林昌烈)씨의 부인 주혜란(朱惠蘭)씨를 그야말로 ‘쥐도 새도 모르게’ 소환했다. 경기은행 대출 알선을 미끼로 4억원을 받은 주씨는 소환 다음날 구속됐다. 이틀 뒤에는 역시 같은 명목으로 1억원을 받은 임지사가 구속됐다.

당시 검찰수사는 ‘성공한 특별수사의 전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뇌물사건이 주요 메뉴인 특별수사의 생명은 은밀하고 치밀한 사전 준비와 ‘기습’이라고 검사들은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29일 전국 특수부장검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지방자치단체장과 토호세력의 비리, 난(亂)개발 비리에 대해 공개적으로 ‘전쟁’을 선포한 것은 순수한 수사측면에서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있다.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검찰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전쟁’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홍보하는 것은 비리 연루자에게 ‘잡으러 갈 테니 꼭꼭 숨어라’라고 알리는 꼴 밖에 안된다”고 말했다.

검찰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것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새해 들어 검찰은 병역비리와 지역감정 조장발언, 심지어는 불량식품 제조행위와 산불 방화 등 사회적 이슈가 제기될 때마다 ‘전쟁’을 선포했었다.

물론 막강한 수사권을 가진 검찰의 엄포는 범죄 발생을 어느 정도 막는 ‘예방효과’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또 검찰이 사회문제에 발빠르게 대처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치밀한 사전 준비 없이 지나치게 시류에 민감히 대응하다 보면 자칫 알맹이 없는 수사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가진다. 검찰이 ‘성역없는 수사’를 천명해온 병역비리와 선거사범 수사가 기대에 못미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구체적인 성과가 뒷받침되지 않는 검찰의 엄포는 양치기 소년의 외침처럼 자칫 국민의 신뢰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신석호<사회부>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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