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대근/'고독한 인생'

  • 입력 2000년 5월 25일 19시 59분


‘고독한 인생’

“법관은 공정을 의심케 하는 모든 언행을 삼가야 하겠기에 친구나 가족에게서 동떨어진 외톨이가 되는 것도 사양하지 않아야 합니다. 법관이 은퇴한 뒤에 남는 것은 가난과 외로움 뿐일 것입니다.” 66년 5월1일 당시 조진만(趙鎭滿)대법원장의 법의 날 기념사중 한 대목이다. 3, 4대(61∼68년) 대법원장을 지낸 고 조진만선생의 평생 지론은 ‘법관은 고독한 인생’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대법원장 취임과 함께 ‘판결문 한글화’를 밀고 나간 것으로도 유명하다.

▷평생 ‘법관의 도’를 지키다 79년 별세한 조진만선생이 뒤늦게 ‘자랑스러운 서울법대인’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에 새삼 그의 가르침을 되새기게 된다. 서울대 법과대학 동창회는 고 조용순(趙容淳) 조진만선생과 아직도 변호사로 활동중인 민복기(閔復基) 이영섭(李英燮) 김용철(金容喆) 김덕주(金德柱)씨 등 대법원장을 지낸 동문 6명을 ‘자랑스러운 서울법대인’으로 선정해 30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현창(顯彰)하기로 했다. 동창회측은 ‘고독했던 대법원장을 이제야 비로소 밝게 나타낸다’는 의미를 담아 ‘현창’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 같다.

▷대법원장은 대통령 국회의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사법부의 장(長)이다. 그러나 우리 헌정사에서 대법원장은 영욕(榮辱)이 교차한 자리였다. 젊은 판사들이 사법부의 신뢰 회복을 외친 이른바 사법파동을 비롯, 이런저런 이유로 임기를 채우지 못한 대법원장도 여러 명 있었다. 과거 대통령의 정부에 맞서 법을 세우기가 그만큼 어려웠다는 얘기다. 어느 대법원장은 퇴임사에서 ‘회한과 오욕’이라는 말로 자신의 임기를 정리하기도 했다.

▷법조의 길은 예나 지금이나 가시밭길이라고들 한다. 오직 자신의 양심에 매달려 법의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책무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 어려운 길을 선택하겠다는 법조 지망생이 갈수록 늘고 있다. 얼마전 서울대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 법과대학 졸업생(243명)의 절반이 넘는 123명이 미취업자이며 이 가운데 118명이 계속 고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선배들의 고독’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송대근<논설위원>dk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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