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윤정국/외국서 제대접받는 '춘향뎐'

  • 입력 2000년 5월 15일 18시 51분


지금 국내 영화계의 관심은 온통 프랑스 남부 해안 도시 칸에 쏠리고 있다. 여기서 열리고 있는 ‘제53회 칸 국제영화제’에 한국 영화로는 사상 처음으로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공식 경쟁부문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칸 영화제가 세계 최고 권위의 영화제이고 보면, 한국 축구대표팀이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축구대회 본선에 진출한 일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공식 경쟁 부문 진출 영화들만 따로 상영하는 영화제 본부 건물 ‘팔레 드 페스티벌’의 뤼미에르극장에는 총 23편의 영화가 최고작품상인 ‘황금종려상’ 등 각종 상을 두고 열띤 경쟁을 벌이고 있어 열기가 후끈하다는 소식이다. 한국의 역사와 예술이 빚은 ‘춘향뎐’이 우리 대표선수로 나가 다른 나라 대표선수들과 당당하게 승부를 겨루고 있는 셈이다.

임감독과 주연배우들이 21일(현지시간) 폐막식에서 뤼미에르극장의 붉은 카펫을 밟고 올라가 관객들의 환호 속에 수상하는 가슴 벅찬 꿈을 꾸어본다. 그리고 이 꿈은 기여도에 높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칸은 전통적으로 감독의 영화적 은 점수를 주어왔는데, 최근 프랑스의 유력지 ‘르 몽드’가 칸 영화제 특집판에서 임감독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영화감독 중의 한 사람”이라고 극찬한데 이어 영화섹션 팀장 기자가 이례적으로 임감독을 인터뷰까지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1월말 이 영화가 처음 개봉됐을 때 영화 팬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결국 서울 15만, 전국 30만명을 끌어들이는데 그쳐 흥행에 실패했다. ‘춘향뎐’의 국내 흥행 실패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었다. 우선 우리에게 너무 잘 알려진 스토리라는 점이 관객을 끄는 데 약점으로 작용했다. 또 국내 영화 관객의 다수를 차지하는 20대 젊은이들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테크노 힙합 음악에 사로잡힌 나머지 판소리를 소재로 한 이 영화를 외면했던 것도 큰 이유였다.

다 알다시피 ‘춘향뎐’은 2시간여의 상영시간 동안 명창 조상현의 완창 판소리 주요대목들이 55분 동안이나 나오는 판소리 영화다. 판소리 교육에 이보다 더 좋은 학습자료는 없다. 랩을 좋아하는 젊은 세대는 판소리가 ‘한국적 랩’이라는 사실을 알면 판소리를 싫어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랩이 미국 흑인들이 현실에 대한 저항과 분노의 감정을 읊은 노래 형식이라면, 판소리는 조선후기부터 우리나라 서민들이 진솔한 감정을 토로한 노래 형식이어서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가 ‘춘향뎐’의 칸 진출을 기념해 이달 중 이 영화를 재개봉하기로 했다는 소식이고 보면, 국내 팬들은 이 영화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떨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된 것 같다. 우리는 축구대표팀이 월드컵대회 본선에 진출하면 밤을 새워서라도 TV를 보면서 응원할 것이다. ‘문화의 세기’라고 하는 21세기 첫해에 ‘영화 월드컵대회’에 진출한 ‘춘향뎐’을 우리는 어떻게 성원해야 할까. ‘춘향뎐’보기 범국민 운동이라도 벌여야 하지 않을까.

윤정국<문화부차장>jk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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