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장세진/로비 양성화해 부패막자

  • 입력 2000년 5월 14일 20시 07분


백두사업에서 경부고속철까지 정부 발주사업에 대한 로비 스캔들로 온 나라가 소란스럽다. 권력과 돈, 그리고 로맨스와 상호 비방까지 겹쳐 뉴스가 증폭되고 있지만 이것들이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로비스트끼리 견제하게 해야▼

대정부 로비는 수주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인허가 금융편의 구조조정에서 입법 사법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로비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로비는 과거가 아니라 중요한 현안이다. 사회 메커니즘 이론의 시각에서 로비는 어떻게 보아야 하고 어떤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까?

'능 좋고 값싼'구매기회라고 생각해 린다 김을 소개해줬다는 어느 당국자의 변명처럼 로비에도 일정한 기능과 역할이 있다. 로비 의뢰자의 입장에서겠지만 로비스트는 필요한 성능과 가격정보를 구매당국에 제공할 수 있다.

여러 로비스트로부터 정보를 수집하되 그 편향을 수정한 객관적 비교를 통해 합리적 결정을 내리는 것은 물론 구매당국의 몫이다.

문제는 로비에서 단순히 구매정보뿐만 아니라 '로비''로비'서처럼 여러 형태의 뇌물이 오고 간다는 것이다. 그 뇌물들이 구매당국자의 올바른 의사결정을 왜곡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필요한 정보는 전달하되 뇌물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로비스트를 다른 로비스트에 의해 견제하도록 해 균형을 이루게 하는 것이 올바른 해법이다.

로비스트의 상호 견제는 당국자의 견제에까지 이르게 된다. 로비스트는 공식 요청을 통해 공평한 면담기회를 가질 수 있다. 이 경우 어느 당국자가 특정한 미모의 로비스트만을 만나는 것을 다른 로비스트가 모르거나 방치하기 어렵다.

이러한 견제는 어느 서글픈 당국자처럼 순정을 이용당했다는 푸념이나 비방의 희극도 막을 수 있고 나아가 당국자나 정부의 신뢰까지 보호하게 된다.

로비를 양성화하고 제도적 틀을 갖추는 사회적 비용이 걱정될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로써 피할 수 있는 일개 뇌물로비의 사회적 손실만으로도 이를 충당하고도 남을 것이다.

더욱이 정직하고 투명한 사회, 정치에 대한 신뢰회복의 가치는 그 몇 배가 될는지 모른다. 로비스트들이 담합할 가능성은 어떠한가? 백두사업이나 고속철 같은 대형수주에서 이러한 담합이 유지되기 어렵다는 것은 구미의 오랜 경험으로 실증된다.

그래도 남은 담합의 여지는 당국이 견제할 수 있다. 로비스트들과 당국의 담합은 더욱 어렵고 위험하지만 이것은 언론과 국민이 견제하게 된다.

일이 터진 후에 사후적 처벌로 수습하는 것은 효과적 대안이 못된다. 우선 수사와 기소가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으므로 뇌물로비 게임은 확률 게임의 형태가 된다. 로비스트는 현안의 이득이 '상평균손실(기소될 확률×형량)' 초과하면 '리적으로'뇌물로비를 행하게 된다.

그런데 일단 사안이 확정되고 나면 설혹 기소된다고 하더라도 번복의 사회적 비용이 크고 과거지사에 대한 관용이 어우러져서, 그 형량은 로비를 예방하기에는 크게 부족하기 마련이다. 결국 모든 일이 그렇듯이 사후적 대처보다는 사전적 예방이 낫다.

▼최저가입찰제도 바람직▼

로비에 의한 이윤추구의 원천 자체를 줄이는 것도 과잉로비의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관점에서 긴요하다. 정부의 재량권은 가급적 준칙에 따라 투명하게 행사돼야 한다.

특히 정부 발주와 관련해 정부의 표준공사가격이 시장가격의 두세배가 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민간입찰에서 정부의 표준가격으로 공사가격을 산정한 후 이를 3분의 1정도로 줄여 입찰예정 가격을 정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과도한 가격은 과도한 수주로비를 유인하는 원천이 된다. 표준가격을 없애지는 않더라도 로비의 유인을 최소화하도록 최저가입찰제도나 네덜란드식 차저가입찰제도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

로비스트간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메커니즘이론의 해법은 시장논리의 확장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시장논리의 핵심은 흔히 경쟁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그릇된 해석이다.

경쟁이야 로맨스나 범죄활동에도 존재한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의 정체는 공정한 규칙에 바탕을 둔 수요 공급자 상호간의 견제와 균형인 것이다.

장세진<인하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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