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남찬순/북한과 호주의 국교재개

  • 입력 2000년 5월 9일 18시 58분


75년 제30차 유엔총회는 유엔사상 가장 심각한 존립위기를 초래한 회의로 기록되고 있다. 미국과 서방측이 적극 반대하던 반(反)시오니즘 결의안이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제3세계 국가들의 단합으로 총회에서 그대로 채택됐다. 그 때문에 유엔경비의 약 25%를 부담하며 세계지도국가로 자부하던 미국의 자존심은 큰 상처를 입었고 미국 내에서는 유엔 무용론과 미국의 유엔 탈퇴론이 한창 제기되기도 했다.

▷당시 남북한은 국제무대에서 치열한 체제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래서 30차 총회에서는 남한의 입장을 담은 서방측 결의안과 북한측 입장을 지지하는 공산측 결의안이 동시에 상정됐다. 투표결과는 서방측안이 찬성 59, 반대 51, 기권 29표였고 공산측안은 찬성 54, 반대 43, 기권 42표. 서로 상반된 서방측안과 공산측안이 동시에 통과되는 이변이 생긴 것이다. 이를 두고 남북한 당국은 각자 자신들이 유엔에서 ‘승리’했다고 떠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한편의 ‘소극(笑劇)’처럼 여겨진다.

▷북한과 호주(濠洲)사이에 국교 단절의 계기가 된 것도 이 30차 유엔총회다. 호주는 유엔총회에 안건을 넘기기 직전 단계인 유엔정치위원회에서 서방측 결의안에 찬성하고 공산측안에 대해서는 기권을 했던 것. 여기에 화가 난 북한은 그 다음날 즉시 호주주재 북한 대사관을 철수하고 평양주재 호주 대사에 대해서도 추방조치를 취했다. 양국관계는 수교 1년여 만에 파경을 맞이한 것이다. 북한과 호주가 국교를 수립한 것은 호주가 미국 일변도 외교에서 탈피, 동구 공산국가들과 국교정상화 정책을 취하던 74년 7월이었다.

▷그런 북한과 호주가 최근 25년 만에 다시 외교관계를 복원해 격세지감(隔世之感)을 갖게 한다. 냉전체제가 붕괴된 후에도 좀처럼 문을 열지 않던 북한은 요즘 국제사회에 나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 같다. 국제사회 또한 북한의 그같은 움직임에 호응, 적극적으로 북한에 노크를 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다. 과거 외교관계 경험이 있는 호주가 그 수교대열에 앞장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북한 호주 관계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중요한 기여를 할 것으로 믿는다.

<남찬순논설위원>chans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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