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홍의 e컬쳐]디지털키드들의 사이버생명 키우기

  • 입력 2000년 5월 7일 19시 24분


어릴 적 아랫목에서 달걀을 부화시켜 얻은 병아리를 제법 장닭이 될 때까지 키워봤다. 토끼도 길러봤다. 아버지가 만들어준 토끼장 안으로 풀을 넣어주며 토끼의 빨간 눈과 눈맞춤한 기억이 새롭다. 금붕어를 기른 기억도 있다. 그만 먹이를 너무 많이 줘서 어항 안이 뿌옇게 되기도 했었지만.

▼달걀대신 다마고치 품어▼

뭔가를 기르는 것에서 느끼는 생명의 공감은 인류의 뿌리깊은 심성이다. 몇 해전 4비트 짜리 칩을 내장한 ‘다마고치’의 등장도 이런 인류의 심성과 무관하지 않다. 다마고치는 일종의 사이버 생명체다. 버튼을 조작해 먹이를 주고 똥도 치워주고 예방접종도 잊지 말아야 성장할 수 있다. 다마고치는 배가 고프면 ‘삐삐’하고 전자음을 발신해 떼를 쓰다가 먹이를 제때 주지 않거나 온도 등이 맞지 않으면 죽게 된다. 발명왕 에디슨이 달걀을 부화시키려고 직접 품고 있었다는 에피소드도 있지만 디지털 키드들은 달걀 대신 다마고치를 품었던 셈이다.

그나마 다마고치만 해도 손으로 만지작거릴 수 있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아예 인터넷 안에서 뭔가를 실제처럼 키우고 기르는 일이 부쩍 늘어났다.

자! 인터넷 안에서 물고기를 키워볼까? 사이트(www.aquaspace.co.kr)를 클릭해보라. 키우고 싶은 물고기를 정하고 자신의 사이버 어항 안을 수초와 수석 등으로 꾸밀 수도 있다. 실제로 물고기를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먹이를 주고 수온도 조절해 주어야 하며 물도 갈아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키우던 물고기가 죽고 만다. 강아지도 키울 수 있다.(www.dsnet.co.kr/dogz/dogz.html) 사이버 강아지는 컴퓨터 안에서 자라면서 나와 함께 놀 수도 있고 내가 작업하는 사이에는 화면의 한 귀퉁이에서 잠시 낮잠을 자기도 한다. 각종 화초도 기를 수 있다(www.desksoft.com/DesktopPlant.html). 3D기법을 통해 식물의 생장과정을 실제보다 더 생생하게 볼 수도 있다.

물론 인터넷의 사이버 공간에서 기르는 화초가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거기에는 진짜 생명이 없다. 분명히 없다. 하지만 생명의 감응(感應)은 있을 수 있다. 생명 없는 것일지라도 생명있는 것이 눈길을 주고 사랑을 부으면 생명의 감응현상이 일어나 생명의 공감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지금 내 책상위에는 조그만 유리컵에 고운 자갈과 함께 심어진 개운죽(開運竹)이 하나 놓여 있다. 분명히 살아있는 진짜 개운죽이다. 그러나 그것이 내게 의미있게 다가오는 때는 내가 그것에 생명의 눈길을 보내며 물을 부어주는 순간 뿐이다. 그 때 비로소 나와 개운죽 사이에 생명의 공감이 싹튼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생명의 눈길을 줌으로써 생명의 감응을 이루는 것이며 그것을 통해 생명을 공감하는 일이다.

▼생명은 없어도 감응은 있어▼

사람들이 아파트 발코니에서 화초를 기르고, 방안에서 강아지를 돌보며, 어항에 금붕어를 키우는 일도 따지고 보면 생명의 공감을 위한 것이 아닐까. 결국 디지털 키드가 다마고치를 만지작 거리는 것이나 인터넷 안에서 사이버 금붕어와 사이버 강아지 그리고 사이버 화초를 키우고 기르는 일도 눈길을 주고 사랑을 부으면 생명의 감응을 일으키고 생명의 공감을 느끼는 일이 될 수 있다.

자! 지금 클릭해 보자. 생명의 감응을 시도하자. 그리고 생명의 공감을 느껴보자. 내 책상위에 놓인 개운죽에게 생명의 물붓기를 하는 순간처럼.

정진홍(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커뮤니케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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