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홍의 e컬처]"네티즌이여 단결하라"

  • 입력 2000년 5월 1일 18시 48분


마르크스가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었다면 …만국의 네티즌이여 단결하라!

154년전 마르크스는 공산주의자 통신위원회를 창설했다. 물론 통신방법은 편지교환이었다. 2년후인 1848년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을 발표했다. 다시 16년이 지난 1864년 런던에서 국제노동자협회(제1인터내셔널)가 창설되었다. 마르크스가 창립선언을 기초했다.

1883년 마르크스가 죽었다. 3년후인 1886년 5월 1일 미국에서 ‘8시간 노동’을 위한 총파업이 감행됐다. 1889년 파리에서 열린 제2인터내셔널 창립총회는 3년전 미국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념해 매년 5월 1일을 노동절(메이데이)로 정했다. 111년이 지나 우리는 다시 메이데이를 맞았다. 그러나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구호는 “만국의 네티즌이여 단결하라!”로 바뀌고 있다.

“만약 마르크스가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브라질의 TV글로브가 제작하고 CNN이 방영한 멕시코의 사파티스타(Zapatista) 저항운동에 관한 다큐멘터리의 클로징 코멘트다. 사파티스타 저항운동이란 1994년 1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출범과 동시에 멕시코 동남부의 치아파스 지역에서 이에 반대하는 원주민과 농민들이 봉기했던 사건에서 시작된다. 노암 촘스키는 이것을 “글로벌 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적 전략에 대항하는 풀뿌리(grass roots) 투쟁”이라고 했다. ‘사파티스타’란 명칭은 20세기초 멕시코혁명의 영웅이었던 에밀리아노 사파타로부터 따온 것이다.

그런데 사파티스타들은 무기고가 아니라 사이버 스페이스로 쳐들어 갔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인터넷을 통해 살포하고 수많은 동조세력을 범지구적으로 결집하는데 성공했다.

인터넷에서 ‘Zapatista’를 야후, 라이코스, 알타 비스타 등을 통해 검색해 보면 관련 사이트가 셈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미국 텍사스대 해리 클리버교수의 사이트(http://www.eco.utexas.edu/faculty/Cleaver/zapsincyber.html)다.

사파티스타들은 1996년 1월,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전지구적 대화를 갖자고 인터넷상에서 공개초청장을 발부했다. 그 해 여름 5대륙의 43개국에서 3000여명의 참석자들이 비내리는 치아파스 정글마을의 진흙탕 속으로 모였다. 회의는 일주일 간 계속됐다. 이에 고무된 제2차 컨퍼런스는 1997년 여름 스페인에서 개최됐다. 역시 세계각지에서 4000여명이 모여들었다.

사파티스타들의 목소리는 낡은 계급투쟁의 공식을 되풀이하는 레코드판이 아니었다. 그들의 언어는 더 이상 낡은 이데올로기에 얽매여 있지 않았다. 투쟁목표 역시 권력의 획득이 아니라, ‘자율’과 ‘자기존중’에 바탕한 ‘인간적 다양성의 보존’이었다. 멕시코 치아파스 지역의 정글 안에 갇혀 있는 사파티스타들이 전세계 네티즌의 관심과 주목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연대투쟁이 가능했던 것은 인터넷이 있었기 때문이다.

흔히 사람들은 네트를 컴퓨터와 전선으로 이뤄진 기계처럼 여기지만 진정한 네트는 거기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 상호간의 관계 그 자체다.

사파티스타들은 풀뿌리 투쟁을 위해 인터넷이란 새로운 개척지에서 담요 짜듯 전자적 직물 구조를 엮어짰던 셈이다. 그리고 세계 도처의 네티즌이 그 성긴 그물코 사이로 들어와 “만국의 네티즌이여 단결하라!”를 실감나게 한 것이다. 사파티스타들의 풀뿌리 투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정진홍(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커뮤니케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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