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휠체어 위'의 투표권

  • 입력 2000년 4월 28일 18시 46분


영국의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58)이 만일 한국인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장애인끼리 그런 농반진반의 이야기를 나눈다고 한다. 정답은 ‘죽었을 것이다’라는 것. 그는 루게릭병에 걸려 고개조차 가눌 수 없다. 폐렴으로 기관지를 잘라내 목소리도 잃었다.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왼손가락 한개와 얼굴 근육 일부. 그 손가락으로 스위치를 눌러 전동 휠체어를 움직이고 컴퓨터를 다루며 의사소통을 한다.

▷그런 불구의 몸으로 연구에 전념해 ‘제2의 아인슈타인’소리를 듣고 케임브리지 대학의 정교수가 되었다. ‘시간의 역사’라는 책을 써서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에서였다면 누가 돌보았을 것이며, 연구에 전념하도록 해주었을 것인가? 장애인들은 그런 가정법으로 우리 형편을 반문하는 것이다. 신의 뜻도 사람의 뜻도 아닌 장애, 그 도리없는 불행을 안고 사는 장애 이웃에 대한 배려가 너무 한심하다고.

▷4·13총선거 때 휠체어를 타고 투표하러 갔다가 계단 때문에 포기한 한 주부(1급지체장애인)가 법에 호소하고 나섰다. 거주지인 경기 광주군 선관위가 장애인복지법을 어긴 것이라며 검찰에 고소한 것이다. 기표소는 계단 23개를 올라가야 하는 2층이었다. 투표하러 올라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으나 선관위측은 오히려 ‘들판에 기표소를 차리라는 말이냐’고 핀잔을 주더라는 항변이다. 바로 이 지역은 ‘3표차’로 당락이 갈려 관심을 모은 곳이다.

▷참정권이란 국민이 국가기구에 참가하거나 참가하는 자를 결정하는 권리, 즉 공무담임권과 선거권 등을 말한다. 여기에 장애인이라고 제한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역사적으로 흑인이나 여성이 백인 혹은 남성에 비해 늦게 선거권을 갖게 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장애가 바로 선거권의 ‘장애’가 된 적은 없다. 비록 한 지역의 사례를 통해 드러난 ‘장애 차별’이라고는 하지만 작은 문제로 여겨서는 안된다. 불편한 이웃을 따스하게 껴안고 그들의 권리와 잠재력을 꽃피우게 하는 나라가 바로 선진국이다. 호킹 같은 성취를 부러워하는 한국의 장애 꿈나무가 한두명일 것인가.

<김충식논설위원>sear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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