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아이 어떡하죠?]김광웅/부모의 거짓말 그대로 배워

  • 입력 2000년 4월 19일 19시 14분


“엄마한테 전화 오면 없다고 그래. 알았지?”

“아빠가 물어보면 절대로 모른다고 그래. 알았지?”

일상생활에서 부모가 정직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별 생각 없이 어린 자녀들에게 하는 말이 결국 거짓말을 가르치는 것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어린 자녀와 약속을 지키지 않고 나서 곤란해지면 “아빠가 언제 그런 약속했어”하며 시치미 떼고 딴소리를 하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무엇을 배울까. 인생 최초의 위증(僞證) 모델이 부모가 아닌가.

지난해 청소년보호위원회에서 한국 가정교육 모형을 개발하기 위해 수행한 연구에 의하면 중학생들의 15%가 ‘아버지가 정직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청소년들 중 많은 수가 부모의 모습에서 정직이 아닌 거짓을 보았으며, 일상생활에서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부모의 모습을 본 것이다.

‘아마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을 것이다. 수업시간 도중 선생님께서 잠깐 나갔다 오시겠다면서 조용히 있으라고 하시며 나가셨다. 아이들이 늘 그렇듯이 얌전히 있지 않고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얼마 후 선생님이 돌아와서 굉장히 화를 내시면서 떠든 사람은 솔직히 손을 들라고 하셨다. 그 대신 벌을 주지는 않겠다고 하셨다. 나는 그렇게 많이 떠든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손을 들었다. 그런데 벌을 주지 않겠다던 선생님은 나를 한 시간 내내 손을 들고 있도록 벌을 주셨다. 나의 잘못보다는 솔직히 손을 든 내가 너무 바보스러웠고 억울하게 손해를 본다는 느낌에 굉장히 기분이 나빴다. 그 뒤부터 나는 그런 경우가 생기면 다른 아이들처럼 그냥 시치미 떼고 앉아 있었다.’ 이 청소년의 솔직한 고백은 우리 사회의 정직성 교육이 크게 잘못됐음을 보여준다.

선현들은 민족의 앞날을 밝게 하기 위해 우리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이 바로 정직이라고 가르쳤다. 민족지도자 도산 안창호선생은 거짓말하지 말라고 호소했고, 외솔 최현배 선생은 ‘민족 갱생의 길’에서 거짓말하지 말고 우악스러움을 버리라고 호소했다. 어린아이들에게 정직을 가르치는 일이 우리 사회를 아름답게 만드는 데 얼마나 중요한 일이며, 이를 이루는 최선의 방도는 바로 우리 어른들이 정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길뿐이다.

미국 초대 대통령 워싱턴의 어릴 적 에피소드를 다시 새겨볼 필요가 있다.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는 나무를 도끼로 찍은 워싱턴이 자신이 그랬노라고 잘못을 고했을 때 아버지가 아들의 정직한 행동을 칭찬하고 격려했다는 일화는 미국인들이 정직과 정직성 교육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김광웅<숙명여대·아동복지학>

청소년 전문가들이 쓰는 ‘우리아이 어떡하죠?’는 매주 목요일 게재됩니다. 10대 자녀 문제로 고민하는 분은 청소년보호위원회 신가정교육팀(02-735-6250)으로 연락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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