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득헌의 스포츠세상]물개 父子의 ‘벤처정신’

  • 입력 2000년 4월 17일 19시 08분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도 똑같군….” 4월초 부산 아시아수영선수권대회 1500m에서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의 작은 아들 성모(경기고)가 금메달을 땄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뭔가 의표를 찔린 느낌이었다. 왜냐하면 올해는 수영선수인 아들보다는 조오련 자신이 또 한번 세인의 주목을 받을 만한 사건(?)을 만들어 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왔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조오련 및 성모를 지도하고 있는 지봉규감독과는 터놓고 지낸 지가 20년이 넘었다. 그래서 성모가 수영선수로는 ‘또 하나의 재목’이라는 얘기를 들어온 터이다. 하지만 그가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한국기록과 대회기록을 경신하며 금메달을 따내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가 고교 1학년인데다 4세 때부터 수영을 했다고는 해도 대회에 나서기는 2년밖에 안돼 아버지의 명성을 이으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여겼었다.

꼭 부전자승(父傳子承)이 아닌가. 성모가 1500m에서 금메달로 수영계를 기쁘게 했지만 조오련은 이미 30년전 아시아를 놀라게 했었다. 그는 1970년 방콕 아시아경기에서 400, 1500m에서 우승했었다. 당시 양정고 2학년이었던 그에게 금메달을 기대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국 수영이 아시아경기에서 금메달을 따기는 그게 처음이었다. 그는 4년 뒤 테헤란 아시아경기에서도 두 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하얀 모시옷을 입고 시상대에 올라 우리를 또다시 흥분시켰다.

지금으로 보면 벤처 정신이랄까. 조오련의 기발한 착상과 행동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1980년 8월에는 대한해협 도영(渡泳)으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1년간의 몸 만들기에 이어 어둠을 뚫고 부산을 출발한 그는 한국 수영인의 의지 표출이라는 일념으로 쓰시마섬까지 49.5km의 거친 파도를 헤쳐나갔다. 그는 도버해협도 건넜다. 조오련이 올해 어떤 일을 낼지 모르겠다는 서두의 말은 바로 올해가 그의 대한해협 도영 20년이 되는 까닭이다. 그는 20주년 기념 대한해협 재도영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성모가 아버지와 자리바꿈하길 기대할 차례이다. “아버지가 못한 세계 정상을 이뤄보고 싶다”는 성모의 말은 사실 조오련이 ‘아시아의 물개’로 이름을 떨쳤지만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는 예선 탈락을 면치 못했던 일도 새기고 있는 것이다.

조오련은 아들이 올해 시드니올림픽과 2002년 부산아시아경기를 경험한 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는 세계 정상을 바라보길 소망한다. 그는 그때까지는 대한해협 재도영 대신 아들에게 정성을 쏟을 작정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긴 여정(旅程)을 지켜보자.

윤득헌<논설위원·이학(체육학)박사>dh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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