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홍의e 컬쳐] 인디언식 e네임 짓기

  • 입력 2000년 4월 9일 20시 50분


“우리는 디지털세상으로 간다. 그러나 세상의 절반 아니 그 이상은 여전히 아날로그다. 버리고 가나? 아니다. 함께 끌어안고 가야한다. 살맛나는 미래를 그리려면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물감을 함께 써야 한다. 자! 아날로그인들이여, ‘정진홍의 e컬처’와 함께 기죽지말고 디지털의 바다를 항해해보자.”<편집자>

디지털문화, 인터넷문화, e문화…. 어떻게 표현되든 우리는 새로운 문명으로 진입하고 있다. 이 새로운 문명으로 들어서는 첫 번째 관문은 자신의 e네임이 담긴 이메일 아이디를 갖는 것이다. 이메일 아이디를 갖는 것은 곧 새로운 문명의 시민권을 획득하는 일이며 디지털호적을 갖는 일이다.

디지털시대에 e네임은 곧 또 하나의 이름이다. e네임을 만들 때 처음에는 대부분 자기이름의 영문자를 옮겨쓴다. 나 역시 처음에는 ‘jhchung’라고 썼다. 물론 지금은 약간 진화(?)해서 ‘3millennium’이란 e네임을 즐겨쓴다.

n세대의 경우에는 보다 다양한 명명법을 동원해 e네임을 만든다. 먼저 우리말을 영문발음대로 표기한 경우다. ‘naypper’는 말그대로 ‘나 이뻐’다. ‘bbosong’도 마찬가지로 ‘뽀송’이다. 또 뜻을 가진 영어와 영어발음식 한글표기가 합쳐진 ‘디지털 이두(吏讀)’ 방식도 있다. ‘joinsy’는 ‘sy에게 붙어라’다. 그런가하면 영문자판 상태에서 한글이름을 그대로 입력해 e네임으로 쓰는 사람도 늘고 있다. ‘정진홍’이란 이름을 영문 자판상태에서 그대로 치게되면 ‘wjdwlsghd’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또 ‘happy2gether’처럼 영화제목 ‘해피 투게더’를 따서 만든 e네임도 있다. 물론 영화제목만이 아니라 좋아하는 연예인 이름을 따는 경우도 많다. 이때 ‘to〓2’ ‘for〓4’ ‘to you〓2u’ 등과 같이 영문자를 숫자로 환치하거나 영문자 전체를 동일한 발음의 영어 철자 하나로 대체해서 글자수를 줄이는 방식도 눈에 많이 띤다. ‘send2u’(〓send to you)도 그런 경우다.

디지털시대의 e네임 이름짓기는 또 하나의 상상력 게임이다. 이름짓기를 상상력의 게임으로 확장시킨다는 점에서 e네임 명명법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발상법과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영화 ‘늑대와 함께 춤을’에는 ‘주먹쥐고 일어나’라는 이름의 인디언 처녀가 나온다. 훙크파파족의 ‘얼굴에 내리는 비’ 블랙푸트족의 ‘머리맡에 두고 자’ 델라웨어족의 ‘상처입은 가슴’ 체로키족의 ‘구르는 천둥’ 등도 모두 실존했던 인디언의 이름이다.

인디언식 발상법에 따른 이름짓기의 특징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동적이고 직관적으로 묘사한다는 것이다. 이 점이 디지털시대의 감성과 어울리는 대목이다. 사람의 이름만이 아니라 달(月)에 대한 명명법도 마찬가지다. ‘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달’(아리카라족의 1월), ‘홀로 걷는 달’ (체로키족의 2월), ‘한결같은 것은 아무 것도 없는 달’(아라파호족의 3월), ‘머리맡에 씨앗을 두고 자는 달’(체로키족의 4월), ‘오래전에 죽은 자를 생각하는 달’(아라파호족의 5월) 등 인디언식 발상법은 명사적 사고, 틀에 갇힌 사고를 여지없이 허문다.

새로운 문명을 형성해갈 e컬처는 미래로만 열려있는 화살표가 아니다. 과거를 반추하며 현재와도 소통하는 전방위적 열림이다. 전방위로 열린 보다 풍성한 e컬처를 만들기 위해 아날로그와 디지털, 아톰과 비트, 인디언식 발상법과 e네임 명명법을 양탄자 짜듯 교직시키고 결합시키자. 나와 너의 디지털 시민권은 그 교직과 결합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정진홍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커뮤니케이션학)

▨필자 약력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동 대학원 졸업(커뮤니케이션학 박사)

△중국 연변과기대 겸임교수

△저서 ‘커뮤니케이션 중심 의제 시대’(지식산업사) ‘아톰@비트’(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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