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나는 구제역, 기는 방역대책

  • 입력 2000년 4월 5일 19시 54분


구제역 발생지역이 파주 홍성에 이어 다른 지역으로 빠르게 번지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국내 축산물은 앞으로 최소 2, 3년간 수출 길이 막히는 등 드러난 피해만도 엄청나다. 전국의 축산농민들은 삶의 터전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는 공포와 불안감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본란은 정부가 철저한 방역대책을 세워 추가 전염을 차단하고 피해를 최소화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그러나 당국이 아직도 사태 수습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매우 실망스럽다. 싸움의 상대는 눈에 보이지도 않으면서 무서운 속도로 번져나가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다. 방역 대책에 한치라도 빈틈이 생기면 곧바로 빠른 전염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 대책에서 가장 큰 의문은 방역작업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축산농가들은 예방접종을 위한 백신이나 소독약품을 얻기 위해 이리저리 뛰고 있지만 물량이 절대 부족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는 보도다. 이러는 사이에 전염이 어디까지 확대될까 염려스럽다. 구제역의 국내 감염원인을 밝혀내는 작업도 중요하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진전이 없다.

홍성 지역의 경우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농가에서 당국에 알리지 않고 ‘자가치료’로 대응하다 다른 곳까지 번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 와중에 이 지역 가축들이 대량 외부로 반출돼 전국적인 전염 가능성을 높이기도 했다. 늑장 신고를 한 농민에게도 잘못이 있지만 파주에서의 첫 발생 이후 구제역의 상세한 증상과 가공할 파괴력을 전국 축산농가에 널리 알리고 신속한 신고체제를 갖추지 못한 당국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미비점 보완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구제역 파문 이후 당국자들이 보여준 무책임한 자세는 이들이 이번 사태의 심각함을 알고나 있는 것인지 회의를 갖게 만든다. 아직 조사결과가 나오지 않았는데도 당국에서는 중국 황사가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를 강조하는 것은 누가 보아도 방역책임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사태 수습보다는 ‘면피’에 더 관심을 쏟는 듯한 모습이다.

며칠전 국회 구내에서 열렸던 ‘파주 산(産) 육류 시식회’ 해프닝은 더욱 한심스럽다. 장 차관과 국회의원들이 참석한 이날 시식회에서는 구제역이 발생한 파주 고기를 쓰지 않고 다른 곳의 고기로 행사를 치렀다는 것이다. 지금은 ‘가짜 시식회’로 어설픈 쇼를 할 때가 아니다. 구제역의 거친 광풍을 잡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일에 모두가 매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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