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창희/낙선운동 '중간성적'

  • 입력 2000년 3월 28일 19시 41분


시민들의 폭발적인 호응 속에 시작된 총선연대의 낙천 낙선운동이 실제로는 그리 폭발적이지 못하다는 중간성적표가 나왔다.

총선연대의 낙천대상자 110명 가운데 출마를 선언한 사람은 3월28일 후보등록일 현재 무소속을 포함해 61명. 최근 동아일보에서 실시한 두차례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그 중에서 지지율 1위가 31명이고 2위도 17명이었다. 낙천대상자로서 출마를 감행하는 인사 가운데 절반 이상이, 많게는 80% 가까이가 그 용기를 보상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총선연대 입장에서는 달가울 리 없는 결과다. 4월13일 투표시점까지는 보름 이상 남았으니 속단할 수 없지만 이런 추세라면 최종성적표도 ‘수(秀)’나 ‘우(優)’가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태풍(颱風)이 미풍(微風)으로 바뀐 것일까. 총선연대측 반응은 크게 두가지로 대별된다. 우선 당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하다. 1월 첫 낙천 대상자 명단 발표 때만 해도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던 시민들이 두달 사이에 다 어디로 숨어버렸느냐는 것이다.

몇 차례에 걸친 자체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낙천대상자는 찍지 않겠다고 호언해 온 상황이고 보면 이런 결과는 총선연대측에 허탈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충분히 예상했던 결과’라는 짐짓 태연한 반응도 있다. 어차피 유권자들의 투표행태가 이번 선거의 최대 장애물인 ‘지역감정’의 벽을 넘어서기 어려우리라는 점은 충분히 예견됐다는 것이다.

조금 부연하면 이런 얘기다. 15년 전 2·12 총선을 기점으로 이 땅에 확립된 ‘3김(金) 정치구도’는 두번째 대통령까지 배출한 지금 최정점에 이르렀고, 동시에 3김 정치의 바탕인 ‘지역감정 정치’ 역시 최고조에 이르러 마지막 분탕질을 치고 있다는 것. 이 ‘85년 이후 최악의 선거’가 지나면 그 뒤엔 지역감정도 더 이상 위력을 보이지 못할테니 이번엔 ‘유권자의 퇴출운동이 무섭다’는, ‘국민 정치교육’ 차원의 상징적 효과만 거두어도 족하다는 것이다.

‘보이는 성적표’와 ‘보이지 않는 성적표’의 차이라고나 할까. 딱히 모순된다고 할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상징적 효과라는 것도 생각처럼 만만한 것이 아니다.

총선연대가 낙천 대상자 가운데 출마하는 50∼60명과 명단 발표 이후 지역감정 조장발언을 한 정치인 등을 포함해 다시 100명 가까운 낙선 대상자 명단을 4월3일 발표하기 위해 준비중이라는 소식을 들으며 한가지 권하고 싶다.

정말 ‘보이지 않는 성적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4월13일을 ‘정치개혁’의 출발점으로 삼고 싶다면 ‘보이는 성적표’ 역시 잘 만들 필요가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지금 총선연대의 역량으로는 이런 대형 명단을 만들어서는 감당할 수 없음이 중간성적표에서 여실히 증명된 셈이다. 명단은 대규모로 만들되 낙선운동은 수도권에 집중한다는 것도 군색하긴 마찬가지다.

낙선운동이 곧 낙선으로 귀착될 수 있을 만큼만 명단을 선정하는 일, 다시 말해 ‘이길 수 있는 싸움’을 하는 것이 자존심보다 훨씬 중요하다. 이 대목이 낙선운동의 분수령이다.

김창희(사회부 차장) ins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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