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죽음부른 '원조교제'

  • 입력 2000년 3월 14일 19시 10분


원조교제 사례에 대한 보도가 꼬리를 물고 있다. 얼마전 초등생부터 여고생까지 20여명을 농락한 40대 파렴치한의 얘기가 들리더니 엊그제는 대학교수까지 원조교제로 경찰서에 붙잡혀 왔다는 소식이다. 다른 나라 일로만 알았던 ‘원조교제’가 우리에게도 독버섯처럼 빠르게 확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청소년보호위원회 같은 정부기관에서도 원조교제를 한 어른들의 얼굴과 신상정보를 TV에 공개하는 등의 대책을 강구하고 있으나 묘안은 없는 모양이다.

사회 일각에서는 당국이 보다 강력한 단속과 처벌에 나서 원조교제를 근절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원조교제를 한 남성의 경우 성범죄자로 처벌한다고 하더라도 미성년자인 여학생들의 처리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이들도 책임이 없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형사처벌이 아닌 봉사활동이나 교육 명령 등 다른 방식으로 처벌하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최근 부산에서 일어난 원조교제 여고생 2명의 자살 사건은 이 문제가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친구사이인 이들은 윤락행위 등 방지법 위반혐의로 경찰에 입건돼 조사를 받은 뒤 귀가조치됐다가 다음날 고층아파트에서 함께 뛰어내렸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이들 중 한명은 유서에서 “아버지에게 약을 사드리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면서 “가족에게 실망도, 피해도 주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고 한다. 경찰의 입건조치가 감수성 예민한 이들에게 견딜 수 없는 심리적 고통을 안겨주고 결과적으로 죽음을 택하게 한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뒤늦게 신중한 대응을 경찰에 지시했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 사건 말고도 최근 청소년 정책들은 지나치게 처벌 위주로 흐르는 인상이다. 얼마전 청소년보호위원회는 청소년에게 술과 담배를 파는 업주들과 청소년들을 함께 처벌하도록 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이같은 일련의 움직임은 보호 위주로 되어 있던 청소년 정책의 기본 틀을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절대 섣불리 결정해서는 안되는 문제라고 본다.

청소년 문제는 보호와 선도, 예방이 최선이며 처벌은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교육환경은 청소년을 숨막힐 정도로 옥죄고 있다. 당장 손쉽다고 처벌조치를 남용한다면 이번 자살사건 같은 부작용은 피할 길이 없다.

한편 청소년들도 각자 옳고 그른 것을 가릴 줄 아는 분별력과 책임의식을 높여야 한다. 원조교제를 근절시키기 위한 그 어떤 대책도 이같은 책임의식이 전제되지 않으면 성과를 거둘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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