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金대통령의 '베를린선언'

  • 입력 2000년 3월 10일 19시 21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9일 발표한 ‘베를린선언’은 북한의 최근 실상과 동향을 염두에 두고 전략적으로 시기를 맞춰 내놓은 제안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작년부터 국제사회로 나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대내외 정책도 실용주의 쪽으로 방향선회를 하는 분위기다. 김대통령의 ‘베를린선언’은 말하자면 북한의 그 같은 변화 분위기를 바탕에 깔고 발표한 것이어서 북한측의 반응에 특별한 관심이 쏠린다.

‘베를린선언’에서 우선 주목해야 할 부분은 정부의 현단계 당면목표를 ‘통일보다는 냉전종식과 평화정착’이라고 밝힌 대목이다. 이는 현재의 한반도 상황으로 볼 때 남북한 통일이 당장은 무리라는 판단을 전제로 남북한이 호혜적인 공존공영의 관계부터 먼저 마련하자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이 매우 현실적이며 바람직한 정책 선택이라고 본다. 그동안 북한은 햇볕정책을 ‘북한을 흡수통일하기 위한 기도’라고 비난하며 과민할 정도의 ‘체제불안증’을 보여왔다. ‘베를린선언’은 그런 북한에 대해 “체제붕괴에 대한 우려를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고 할 수 있다.

통일이 지상목표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자칫 통일만을 강조하다가 그 방법론을 두고 남북한간의 갈등이 심해지면 그것은 결국 통일을 저해하는 셈이 된다. 따라서 우선 남북한간의 화해와 협력의 폭을 넓히고 신뢰를 쌓아 점진적으로 통일의 토대를 구축해 나가는 정책이 더 현실적인 ‘통일 접근책’일 것이다.

정부의 통일에 대한 기본인식과 목표가 이렇다면 북한도 이제는 당국간 대화를 주저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북한은 그동안 여러 갈래로 남한기업들과 교류해 왔다. 그러나 기업들과의 교류에는 한계가 있다. 사회간접자본의 확충과 안정된 투자환경조성, 그리고 농업구조개혁은 민간경협 방식만으로는 성사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북한당국은 현재 추진중인 신의주 수출기지 건설의 성공을 위해서도 당국간 경제협력제의에 응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북한은 91년 자유경제무역지대로 지정 선포한 나진 선봉지구의 외자유치 실패 경험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북한은 미국 일본 등 주변국들과의 관계개선에 과거와 다른 열성을 보이고 있는 듯하다. 김정일(金正日)노동당 총비서의 중국방문 가능성에 대한 보도도 나오고 있다. 북한이 ‘체제불안증’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개방 개혁으로 나오게 하는 데는 주변국들의 ‘조언’과 협력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베를린선언’의 실현을 위한 정부의 외교적 노력에도 빈틈이 없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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